임명룡이 만난 사람 - (1)



봉사 짱- 죽변 동양호 선주 넷째 딸

눈뜨면 죽변 아침 바다 서울에 배달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 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박목월의 『사투리』 일부.

이서윤 한솔코팅 실장을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한 해 동안 수고가 많았다는 연말인사를 문자로 보내왔는데 조금 놀랐다.

그녀로부터 수많은 행사 안내문 외에 인사문자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아무 직책도 없고 사회적 활동도 없는 방외지사까지 살뜰히 인사를 챙길 정도로 그녀가 한가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 문자를 보냈다. “님은 그냥 짱이었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사람
3월을 하루 앞두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직장을 찾아갔다. 공장은 전철역에서 가깝고 ‘한솔코팅’이라는 간판이 선명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저녁 6시가 지났지만, 5층 건물에 1층에서부터 5층까지 수십 종의 코팅기계들이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업계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실적이 높은 코팅회사라는 타이틀이 실감났다. 공장을 둘러보고 있자니 외출 중이던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제대로 인사도 나눌 새 없이 기계 사이로 오가며 일거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100미터 거리에 위치한 2공장으로 안내했다. 2공장에도 대형 코팅기계 8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다시 1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입구에는 산더미 같은 인쇄물 앞에서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성대고 있었다. 일감으로 입고된 인쇄물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코팅이 힘들게 된 듯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직원들과 달리 샘플을 들고 5층 사무실로 단숨에 올라간 그녀는 몇 군데 거래처에 전화를 동시에 걸어두고, 이리저리 오가며 일사천리로 해결해내었다. 무슨 일이든 상황판단에 선 순간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몸부터 움직인다는 그녀는 한솔코팅의 실장이자 대표의 부인인 이서윤氏다.


그래서 서울 반, 울진 반
출향인들은 밴드나 카톡 같은 SNS를 통해 고향 소식을 자주 접한다. 이서윤씨는 울진과 관련된 여러 밴드에서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내가 “님은 짱”이라고 대답문자를 보낸 첫 번째 이유다.

나는 평소 아침에 기상할 때쯤 스마트 폰 진동 소리에 일어나 게시물을 올린 사람의 이름들을 살펴본다. 이서윤이라는 이름이 뜨면 곧바로 클릭을 한다. 그녀가 올리는 새벽 글 대부분은 고향 울진 바다다. 사는 곳은 서울인데, 울진 영상을 더 많이 올리는 사람이 이서윤씨다.

죽변항이 주로 등장하는데 특징이라면 그녀의 영상물은 성격만큼이나 활기차고 시끌벅적하다. 뱃고동 소리도 요란하고 어판장에 쏟아지는 물량도 엄청나다. 그래서 그녀가 올린 영상은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힘이 난다. 낮에 올리는 사진은 활기와 정감으로 가득한 울진 재래시장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산해진미 푸짐한 고향음식과 술이다. 지금도 어머니가 계신 고향이 너무 좋아 틈만 나면 울진에 가고 고향 풍경을 나눈다고 했다. 영상을 받는 이는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봉사활동의 달인
SNS를 통해서만 보았던 이서윤씨를 실제로 만난 것은 작년 7월 15일이었다. <내사랑 울진> 밴드에서 사라호 태풍에 피해를 입고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 안으로 이주를 했던 마현리 울진마을에 일손 돕기를 했는데 마침 그때 취재를 위해 동행했었다.

이서윤씨가 그동안 울진과 관련한 수많은 행사에 물심양면으로 봉사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대단했다. 주민들을 대접할 음식을 장만하느라 공장 식당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도 새벽부터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하는 날씨임에도 봉사단원들을 합쳐 약 200여명의 점심상을 차리느라 동분서주하는가 싶더니, 다른 장소로 이동해보면 어느새 상차림을 마치고 왔는지 수확한 파프리카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런 재빠른 몸놀림으로 그녀는 수도 없이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내사랑 울진> 밴드의 마현리 일손 돕기는 그때가 두 번째였다. 작년 7월 이후로도 평해 노인요양원에서 노인 돌보기 행사 자원봉사를 두 차례, 울진군 마을 경로당 노인위로잔치 두 차례, 마현리 이주민 고향방문 동행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각종 자료를 통해 보았다.

그렇게 활동을 많이 하는데 힘이 들지는 않은가 물었더니, 자신이 원해서 하는 봉사가 무슨 힘이 드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늙어 힘이 떨어질 때까지 울진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다. 이서윤씨에게 “님은 짱”이라고 칭찬한 두 번째 이유다.


죽변항 동양호 선주의 넷째 딸
5녀 1남,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 집안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지런한 성격은 부모님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죽변항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배를 소유한 덕분에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아들을 바라 딸이 많았던 게 아닌가 싶어 아버지께서 아들만 챙기지 않았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아들이 소외를 느낄 정도로 딸들을 예뻐했다는데, 그런 아버지가 작년에 작고하시는 바람에 몹시 충격이 컸다고 한다. 이태 전에 자궁비대증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넷째 딸(이서윤)이 해삼탕을 먹고 싶다는 말에 오토바이를 타고 서둘러 어시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고 그 후유증에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며 자책했다.

이서윤씨에게 아버지는 그렇게 특별했다. 울진을 갈 때마다 어시장을 찾아 고향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는데, 동양호 선주님 딸이라며 반겨주시는 덕분에 아버지의 흔적이 느껴져서 좋다고 한다.


오라버니에 대한 환상과 조력자
“이서윤님은 백조의 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있잖아요, 백조가 물위에 우아하게 떠있지만 물속에 잠긴 백조의 발은 쉴 새 없이 물을 젓는다는 거” 내가 본 울진과 관련한 행사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주인공인 적이 없었다.

연말연시 종무식과 시무식에 체육대회며 등산이며 수많은 봉사활동에서 그녀는 언제나 뒷바라지를 전담했다. 집안에서 넷째였지만 실제로는 맏아들 역할을 해왔고, 시댁에서도 그 몫을 해온 지 오래지만 고향 울진에 관련된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제게는 오빠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언니만 셋이고 위에 오빠가 없다보니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어요. 고향 오라버니들이 그래서 편한 것 같고 도와드리게 돼요.”

조그마한 몸으로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바지런한 그녀를 보면, 애처로우면서도 든든한 여동생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사투리 욕도 곧잘하는 이서윤씨에게서 “오라베” 소리를 듣고 싶지만 내 깜냥으로는 턱도 없다.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경상도 여동생 같다.

아쉬움을 접고 일어서려는데 “같이 봉사활동을 해온 분들이 참 많은데, 저만 주목받는 것 같아 죄송해서 어쩌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해주세요. 제가 다 찾아뵐 테니까.


                                                          /임명룡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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