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1970년대 중반, 후포항 후포극장에서 ‘맹룡과강’을 봤다. 자다가 이불을 걷어찰 짓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것이 영화지만 그 시절만 해도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연례행사였을 정도였고, 드물었던 만큼 영화를 보고나면 감정이입이 깊고 오래갔다.

그래서 무술영화를 보고 나오는 남자는 건들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자기가 날아다니는 주인공인 줄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도 남자다. 맹룡과강을 본 후로 한동안 나는 이소룡이었다.

하필 경상도 사람들은 ‘명’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맹’이라 한다. 그래서 나는 경상도에서 임맹룡이고 맹룡과강이다. 창피스러움을 알 나이가 되면서 그것 때문에 간절히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얼마 전, 쉰 살이 된 여동생이 이름을 바꾸겠다고 연락이 왔다. 임은숙이라는 예쁜 이름을 임가은로 개명한다고 했다. 동생은 작명소에서 만든 도표를 내게 카톡 사진으로 보여주었는데 4가지 운이 모두 ‘흉(凶)’으로 표시되어있었다. 고집이 센 녀석이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연락만 해온 터라 말려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개명을 한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그런데 작명소에서 활용하고 있는 성명 분석 방식이 대부분 일본사람이 만든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동생에게 네가 보여준 도식은 구마사키라는 일본 사람이 만든 성명학(熊崎式姓名學)이라고 했더니 “아무튼 바꿀래, 듣고 났더니 찝찝해서 안 되겠어”한다. ‘네 이름이 되게 흉스럽다, 그래서 네가 돈이 안 붙는다’는 소리를 듣고도 기분이 안 상하면 그 사람은 분명히 대단한 부자일 것이다.

이름이란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 민감함 문제다. 지금도 그렇지만 까마득한 옛날에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꺼리는 ‘실명경피속(實名敬避俗)’이 있었다. 또 기휘(忌諱)라고 하여 임금님이나 조상님의 이름 글자를 적거나 읽는 것을 피했다. 문헌에 같은 글자가 있는 부분은 그 글자를 지우거나 다른 한자로 대체하기도 하고, 종이를 덧붙여 아예 건너뛰기도 했다.

그래서 공자는 이름을 두 글자로 짓는 것을 경계했다. 두 글자로 짓게 되면 그만큼 기휘(忌諱)가 많아지므로 후손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왕들의 이름은 대부분 자전(字典)에서도 보기 드문 외자로 짓게 된 것이다. 세종은 이름이 도(祹), 세조는 유(瑈), 정조는 산(祘)이다. 흔한 글자가 아니어서 심지어 한자의 음도 확실치 않다. 산(祘)은 음이 ‘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임금뿐 아니라 일반 선비들도 드문 글자로 외자 이름을 지었다. 퇴계는 황(晃), 율곡은 이(珥)다. 글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꺼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심지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지원은 사헌부(司憲府) 감찰로 임명되자 ‘司憲’이 큰아버지 이름 사헌(師憲)과 음이 같다는 이유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능참봉 자리를 선택했다.

까마득한 옛날에도 사람들은 자기 이름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두 가지 이상의 이름 가지기를 좋아한 풍속인 ‘복명속(復名俗)’이 유행했다. 그러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마음대로 고칠 수는 없는 법, 이름을 대신할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것이 자(字)이다.

또한 이름은 태어날 때 짓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정체성을 담을 수가 없다. 내 이름은 ‘밝은 용(明龍)’이란 의미를 가지고 ‘맹룡’으로 불리었지만 나는 용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용처럼 되어주기를 바라 항렬자 대신 龍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용이 될 재목도 아니고, 되고 싶지도 않은 아이는 그 이름이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부친이 원하는 바여서 흉내를 내는데 그것이 영 어설프다. 그래서 자(字)는 부모가 짓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옆에서 지켜보던 부친의 친구나 스승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 관례를 할 때, 이름을 보완하는 글자로 지어주었다. 자기 이름에 불만이 많은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식 성명학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다. 자(字)를 짓던 문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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