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시인,논설위원)

 

며칠 전 볼일이 있어 한 가게에 들렀다가 청소년 선거연령 문제로 설왕설래하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가 (“너희”의 울진사투리) 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해 뭘 알아?』 하는 것이 그들의 결론인 듯했다. 듣고 있다가 쓴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요즘 청소년들을 자기들 기준에서 너무 어리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된 우리 현실과 초등학교 6학년 교육과정에도 『민주정치란 무엇인가』 를 배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수준과 가치판단 능력은 어른 못지않다. 기성세대 스스로 걸핏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사실상 성인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수준을 너무 모른다.

필자는 첫 투표를 1975년에 ‘할뻔’ 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의 존폐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했던 것. 유신헌법에 반대했던 필자에게도 참정권이 최초로 주어지나 하고 기대했는데, 만 20세에서 조금 모자라 투표권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선거연령은 20세였다. 선거연령은 지난 1948년 최초의 선거 당시 만 21세로 시작돼 1960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만 20세로 낮춰졌다. 이후, 2005년 6월 선거법 개정으로 만 19세로 하향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선거연령을 19세에서 만18세로 확대하자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소속의 청소년들이 일부 야당 당사와 국회 앞에서 『청소년 참정권 보장』과 『선거연령 하향』 등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청소년 참정권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전 세계 232개국을 기준으로 215개국이 만16~18세 이상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만19세 이상을 선거권 부여 기준 연령으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이웃한 일본조차도 18세에 선거권을 부여한다. 북한,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은 17세, 오스트리아, 브라질, 쿠바, 수단 등은 16세이다.

② 18세 청소년은 참정권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의무를 지고 있다. 교육,근로,납세, 심지어 국방의 의무도 가진다. 병역법상 군 입대도 가능하고,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 시험 응시도 가능하며, 민법상 결혼도 할 수 있다. 운전면허 취득도 가능하지만 선거권만 19세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다.

③ 일부 야당이 학제와 연계해 찬성하겠다는 것은 지난 촛불광장에서 보여준 고교생들의 성숙한 정치의식과 민주시민 의식을 보고 위기를 느끼고, 가까운 선거에서 만18세에게 선거권을 보장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거래다. 학제개편이 국민 공감대를 갖기 힘든 상황에서 학제개편을 조건으로 내거는 건 안 하겠다는 꼼수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편 일부 정치권이나 기성세대들의 청소년 참정권 보장 반대 근거는 이렇다. 첫째, 18세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성숙함으로 선거권을 부여하기에는 시기상조다. 둘째, 입시중심의 교육제도 하에서 청소년에 대한 시민의식, 정치의식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 셋째, 현재의 18세는 대다수 고교 재학생으로 이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부모나 보호자의 영향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들에게 선거권을 주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일부 기성세대에게 묻고 싶다. 한국 18세는 다른 나라 18세보다 멍청한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학력과 지식수준은 세계 청소년과 견줄 때 상위권이다.

우리 정치의 오랜 굴레인 지역주의나 색깔논쟁, 부정부패세력 비호 등의 편향성과 이성적 사리판단에서 현명치 못한 일부 기성세대가 현재의 18세보다 나을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18세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으려면 비슷한 논리로 이들의 선거권도 박탈해야하지 않을까.

필자는 『낭랑 18세』 하면 ‘저고리 고름 말아 쥐고서 (중략) 소쩍새 울 때만 기다립니다.’ 하는 가사가 떠오른다. 『낭랑』 이라는 낱말은 맑고 또랑또랑하고 상큼하다는 뜻이렸다! 아주 절묘하게 18세에 들어맞는 말이다. 이미 논쟁은 끝났다. “너그들이 뭘 알아?” 하는 기성세대의 물음에 청소년들은 “우리도 알 건 다 알아요” 당차게 답하고 있다.

특히 18세는 그 어떤 연령보다 예민하고 감수성과 연대감이 높다. 그 청춘의 폭발적 에너지는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이자 희망이 될 큰 자산이다. 『낭랑 18세』 가 소쩍새처럼 마냥 선거권을 기다리게 하는 『낙망 18세』 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정치권이 결단하여 그들에게 선거권을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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