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살아오면서 이 사람이 살던 시대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었고, 그 사람과 같은 시대에 살아서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2명 있다. 마이클잭슨과 스티븐스필버그다.

한 개인의 삶은 그 사람의 기억과 추억의 총합이라고 했을 때, 내 메모리에 축적된 무수한 편린들의 형성에 저 두 사람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까마득한 시절,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전 학년이 단체 영화 관람을 했다. 단돈 50원으로 개봉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기말시험도 끝난 데다가 여름방학을 앞두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울산 천도극장에서 영화 <1941>을 보았다. 기존 코믹영화와 차원이 다른 웃음코드에 충격을 먹었다.

관람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영화보다 내가 더 웃겼다고 했다. 그때가 1980년 여름이었고 스티븐 스필버그 시대가 개막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1980년대, 블루진(blue jean)을 입고 빌리진(Billie Jean)을 따라 추던 우리 스물의 세월은 버그와 버거의 시대였다. 스필‘버그’ 영화를 보고 햄‘버거’를 먹으며 연애도 하고 데모도 하고 군대도 갔다.

그만큼 강력했던가. 1980년대에 펼쳐진 여러 개의 세계이미지들이 집단으로 공유되면서 형성된 그 시절의 집단자아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미국이나 서구의 일상문화에서 80년대 복고 열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일본도 그 시대를 추억하는 기성세대와 그 시절을 선망하는 젊은이들이 80년대의 유행들을 불러오고 있다.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어깨에 패드를 넣은 재킷을 입고 앞머리를 잔뜩 부풀린 채 디스코를 추는 영상이 조회 수 5천만을 넘었다. 문화의 첨단역할을 하는 영화도 80년대가 아직 유효하다. 그 시절에 탄생한 작품이 아직도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는가하면, 리메이크 되는 영화들도 대부분 19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얼마 전, 스티븐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았다. 올해 74세, 생체 나이로 이미 노인인 그는 여전히 최고였고 영화는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영화의 배경은 2045년, 얼핏 보면 스티븐스필버그 시선은 여전히 미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래의 사람들은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가상 세계(OASIS) 안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로 세상을 경험하고 기억(memory) 한다. 이 오아시스를 만든 괴짜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는 죽음을 앞두고, 가상현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에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미션해결의 힌트는 자신이 사랑했던 1980년대 대중문화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통해 스필버그의 시선은 미래에 있는 것 같지만 가슴은 1980년대에 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영화 속 괴짜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는 스티븐스필버그의 ‘아바타’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오아시스를 재현했다. 그래서 미래의 가상세계 오아시스도 스필버그 자신이 사랑한 1980년대 대중문화로 만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팝송이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듀란듀란이 수시로 등장하며 아하의 ‘테이크 온 미’, 반 헤일린의 ‘점프’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과 ‘백 투 더 퓨처’, ‘터미네이터’ 그리고 ‘스타워즈’, 킹콩과 고질라, 건담 그리고 오락게임 ‘겔러거’까지 80년대로 장식됐다.

추억이 샘솟아 영화에 몰입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은 아직도 내가 만든 80년대 오아시스에 빠져있을 뿐이야” 지금 세계가 복고하는 1980년대는 기억(memory) 편린(bit)들의 집합체인 가상세계일뿐이다.

장밋빛 미래가 없는 현실이 80년대를 끌어내고 있지만 추억일 뿐 미래세대까지 동경하도록 만드는 것에는 반대다. <레이 플레이어 원>은 분명 최고의 영화다. 하지만 80년대 오아시스는 이제 그만 안녕하고 싶다. “Ready Player 1”은 80년대 겔러거 같은 슈팅게임이 끝나면 뜨는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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