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이 만난 사람 - (2 ) 출향인 가수 최누리



“거일2리 대게원조마을 출신 미녀가수, KBS 전국노래자랑 동대문구 최우수상, 고향사람들 주축 후원회원 1천여명 달해, 어머니를 닮아 추석날 콩쿠르에서 모녀가 상을 휩쓸어”


▲그리움이 애잔한 고향 가수 최누리

아직도 ‘해당화 피고지고 물새가 울 것 같아’, 떠올리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그리운 해안가 마을이 하나 있다.

스물한 살, 세상이 반짝이던 나이에 나는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그 작은 마을 앞을 지나갔다.

바다색을 닮은 함석지붕들이 야트막히 촘촘한 그 마을 앞을 지날 때면, 반대방향으로 등교를 하는 학생들과 엇갈리게 마련인데 교복을 입은 예쁜 여고생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야, 대한의 방위병”이었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볼품없게 만드는 유니폼 2종을 고르라면 하나는 방위복이고 또 하나는 민방위복이다.

원호가족이었던 나는 그 마을에 있던 군부대에서 행정 방위병으로 5개월 간 복무했었고, 미녀가수 최누리는 그때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던 가장 예쁜 여고생이었을 것이다.


▲울진 평해읍 거일리 출신 미녀가수
이번에는 울진 출신 미녀가수 최누리씨를 만나서 그녀의 일상을 들어보기로 했다. 가요 <내사랑 울진>을 부른 가수다.

수원시청 바로 앞에 그녀가 살고 있다는 주상복합아파트 1층 카페에 도착하니 금방 나타났다. 작고 뽀얀 얼굴이 누가 봐도 연예인이다. 오후에 있을 공연 때문에 미리 행사복장과 화장을 하고 왔다고 했다. 170센티미터에 가까운 늘씬한 키에, 연예인 특유의 포스가 느껴지는 짧은 치마여서 다리 길이만 1미터가 넘어보였다. 눈 화장이 짙어 얼핏 보면 강해 보이는 눈빛인데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자니 수줍음 많은 천생 울진 순둥이다.

최가수님 고향이 울진 어디인가요? “거일리요, 평해읍 거일2리” 아, 거일2리라면 오래전에 해안 군부대 중대본부가 있던 곳 맞죠? 제가 거기서 방위병으로 근무했어요. “어머, 지사장님 방위였어요? 저는 그 군부대 군인들한테 인기가 진짜 많았는데.”하며 해맑게 웃는다.

가수 최누리(본명 최영화)의 고향이라는 거일2리는 우리나라에서 대게를 대표하는 원조 대게마을이다. 현재는 대게 공원이 있고, 파도막이를 넘는 커다란 대게 조형물이 설치된 곳이다.

나는 이 마을이 유명해지기 오래 전에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해빈단호기(海濱蜑戶記)’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썩 달갑지 않았지만 글 안에 등장하는 마을 이름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특별히 메모를 해두었다.

여음(餘音), 율현(栗峴), 구미(鷗尾), 해진(蟹津), 정명(正明), 박곡(朴谷), 표산(表山), 장정(長汀), 도현(陶峴), 망양정(望洋亭), 사동(沙銅). 지금의 후포면 금음리에서부터 기성면 사동리까지 해안 마을들이 정겹게 나열된 것이 신기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마을이름은 단연 해진(蟹津)이었다. 도대체 ‘대게’가 얼마나 많이 잡혔으면 마을 이름이 <대게 나루>일까. 그렇게 대게가 많이 잡히는 거일에서 아버지는 배 사업을 하셨고, 최가수는 2남 2녀 중 둘째로 나고 자랐다.
 

▲뛰어난 노래실력과 출중한 외모
최가수님, 어렸을 때는 어땠나요? “큰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함은 거의 없었어요. 저는 그냥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하고 순한 맏딸이었고요.”

후포항 갓바위를 지나서부터 평해 남대천까지는 크고 작은 해안마을들이 벼랑에 숨기도 하고 해안에 붙기도 하여 전체로 보면 그 숫자가 꽤 된다.

그래서 후포나 평해를 가지 않고도 자체 행사가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가요콩쿠르 대회였다.

“어머니가 노래를 정말 잘 불렀어요. 저보다 재능이 훨씬 더 많아요. 요즘시대 나셔서 가수를 했다면 크게 성공했을 거예요.” 그런 어머니를 닮아 어려서부터 노래는 참 잘했고, 추석날 콩쿠르에서 모녀가 상을 휩쓸었단다.

당연히 학교에서도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다. “한번은 음악실기시험에 가곡을 불렀는데, 선생님께서 <비목>을 트로트로 부르고 만점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 너밖에 없다고 하셨어요.(웃음)” 키도 크고 날씬한 데다 예쁜 얼굴에 노래까지 잘 했으니 연예인이 되라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을 터였다. 늦게라도 가수가 되지 않고는 그 미련을 떨칠 수 없었으리라.


▲KBS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가수 데뷔
2003년 <KBS 전국노래자랑> 서울 동대문구 편에서 최우수상을 탔다. 그리고 이듬해 <KBS 도전주부가요스타>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나이가 마흔에 접어들 때지만 더 이상 가수의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라디오 전화노래방 아세요? 처음에는 그런 프로그램에서 상을 휩쓸었어요. 공개홀에서 하는 연말대회에서도 대상을 탔어요. TV에서도 큰 상을 몇 번 받으니 정말 가수가 되고 싶더군요. 포기를 하면 앞으로 후회만 남을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본인의 의지만으로 가수가 바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1월, 고향분의 도움으로 5백만 원의 작곡비를 들여 유명작곡가 박성훈으로부터 곡을 받아 첫 음반을 냈어요. “딱 10년 전이죠? 세상이 내 것 같았어요.(웃음) 욕심이 나서 이듬해 바로 ‘최영화’라는 타이틀로 음반을 냈어요. 홍보를 해야 되기 때문에 후원이 절실했어요. 그때 고향 분들이 구원해주셨어요.”

고향 울진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후원회와 팬클럽을 만들었다. 최영화에서 예명을 최누리로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재경울진군민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용승 회장이 후원회를 구성해서, 동아베스텍(주) 배준집 회장이 초대 후원회장을 맡아 지원을 많이 했다. 후원회와 친분관계에 있던 당시 뉴서울CC 임동혁 대표도 직간접 지원을 했다. 뉴서울CC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속이기 때문에 방송국에 인맥이 닿기 쉽다.

2012년에는 트로트계의 전설 ‘설운도’씨로부터 <사랑에 불이 났어요>라는 곡을 받아 음반을 내고 TV방송에도 출연이 이어졌다. “제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KBS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출연도 했고, 'KBS 가요무대‘에도 나가고 그랬지요.”

외모가 워낙 출중해서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겠는데요? “(웃음) 사실, TV방송의 특성을 살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현장 관객들로부터는 큰 호응을 받았는데, 시청자들에게는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TV출연 기회가 주어졌을 때 후원해주시는 팬들께 보답하고 싶었는데,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보다 아쉽다고 했다. 가수 최누리를 인터뷰하기 전에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니저의 무능이 큰 문제였다고 한다.

한창 TV활동을 이어가야 할 때 유능하다는 소문만 듣고 매니저를 고용했는데 2년이 넘도록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후원회가 나서서 매니저를 그만두게 했고, 대신 각 지역 팬클럽 운영진들이 매니저 역할을 맡아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후원회에서 어렵게 구해주셨는데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5집 가수로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후원회와 팬클럽 운영진들의 도움이 정말 컸어요. 너무 고마워요.” 가수 최누리 팬클럽 회원들은 결속력이 대단하다. 회원 수 1천명에 달하는 다음(DAUM) 공식 팬카페에서는 매년 연말 팬미팅을 여는데 참여규모도 대단하다.


▲본업 보다 봉사활동을 더 많이 하는 가수
울진 사람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가수 최누리는 오랫동안 울진군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울진의 행사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여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지금 그녀는 <바르게살기운동경기도협의회> 홍보이사도 맡고 있다. 경기도내에만 31개의 산하단체가 있어서 봉사활동이 정말 많다. 이 밖에도 최가수는 <사랑의 종소리>라는 봉사단체에서 활동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해피 봉사단’, ‘경기도 장애인 봉사단’, ‘한국연예예술 봉사단’ 등등.

봉사활동을 그렇게 많이 하면 돈은 언제 벌어요? “예, 봉사활동을 많이 했죠. 그러다보니 돈은 많이 벌지 못했네요. 그래도 여기 집을 샀어요.(웃음) 봉사활동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장애인들이나 노인들 그리고 골목시장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신나하는 표정을 보면 노래하는 게 정말 기뻐요.

근데 정작 부모님께는 그렇게 해드리지 못해 항상 죄송해요. 만나면 괜히 퉁명스럽게 굴고(웃음)” 그러고 보니 최가수 옆에는 커다란 쇼핑백에 무언가 가득 차있다. “고향 거일에 계시는 부모님께 보내드릴 어버이날 선물이에요.” 수줍게 웃는 모습이 참 청순해 보인다.

5집 가수로서 앞으로의 희망을 물어보려는데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눈화장이 짙어서 눈빛이 강해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연예인 ‘선우은숙’씨를 꼭 닮았어요. 이제부터는 초연하고 청순한 최누리씨 원래 이미지를 드러내는 게 어떨까요?” 한참 수줍게 웃더니, “저 원래부터 저를 잘 못 바꾼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봉사활동 열심히 하고 이렇게 살래요.”한다. 고향 생각이 나게 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여인’ 같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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