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시인,논설위원)

 

오월 어느 날, 경북 최북단 울진 고포항을 찾았다. 구길인 7번 국도에서 바라보는 쪽빛 동해 바다! 가슴이 확 트이고 수평선이 가물거린다.

고포 마을로 내려가는 초입 어디선가 아까씨 향 내음과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봄을 재촉하고 있다. 바다는 오랜만에 평화롭다. 방파제 가까이 다가가면 바다는 속을 훤히 드러낸다.

검붉은 미역 줄기들이 짬(미역바위)마다 마치 기다란 옷고름처럼 일렁인다. 미역을 나르는 노 젓는 작은 배들이 한가롭다. 예전처럼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미역 운반선인 떼배는 없다. 짬 둘레에서 미역 채취로 물질하는 잠녀들의 잠수복이 햇빛에 빛난다. 미역채취 풍경의 또 하나는 까꾸리를 이용해 풍락초(바다에서 밀려온 미역 건더기)를 건지기도 한다.

울진 동해안은 지금 온갖 해초들로 수확 철을 맞았다. 그 유명한 고포 미역도 풍년이란다. 고포 마을이장의 말로는 지난해와 올해 ‘생육환경’이 적절했던 덕분에 유독 미역 생산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울진 고포 돌미역은 예로부터 임금에게 바친 진상미역으로 이름났으며, 지금도 전국에서도 최고의 상품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고포미역은 찰지고 좋아서 국을 끓이면 뿌연 국물이 우러나서 미역국을 끓일 때 참기름을 붓지 않아도 된다. 반면 인공 건조된 일반 미역은 국물색이 새파랗다. 고포미역의 명성이 높다 보니 다른 지역의 미역을 고포미역으로 이름 붙여 파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주의를 요한다고 한다.

울진의 12령 옛길은 소금과 미역과 같은 건어물을 보부상들이 쪽지게로 지고 봉화, 영주 등 내륙으로 드나들던 음식문화사 현장이다. 미역이 산후조리에 특효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내륙의 주민들은 울진 미역을 산모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로 생각했다고 한다.

산모에게 주는 미역을 살 때는 미역을 동강내어 꺾거나 그 값을 깎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난산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태아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태아교육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속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산모에게 특효인 미역국은 언제부터 유래했을까? 문헌상으로는 8세기 초 당나라에서 서견이라는 사람이 쓴 『초학기』에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 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견이 기록한 고려인의 식습관도 재미있지만, 우리 선조들의 바다생물에 대한 탐구력도 대단하다. 대체 고래가 어떻게 미역을 먹는 것을 보았을까? 고래가 포유류로서 새끼를 사람처럼 낳기 때문에 그러한 상상력을 발휘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 한 재미있는 역사기록이다. 고래가 미역을 먹는 생태에 대해 현대 과학 진화론자들도 고대화석 발견을 근거로 고래의 조상은 약 6500만 년 전 다리를 가진 육상동물이었다고 본다. 육지 보행 시기를 거쳐 바다로 들어가는 진화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고래의 조상은 육상에 사는 동안에 풀을 먹다가 그 습관이 바다로 들어가서도 계속돼서 갈조류인 미역을 먹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고래가 바닷물과 함께 미역을 먹었다면 그것은 미역국을 먹은 거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미역은 흉년에 아주 훌륭한 구황 식재료였다. 쌀이 귀한 시절, 밀가루나 감자 따위를 넣고 또는 넙치를 넣어 끊여 먹었다. 넙치 미역국 한 그릇에 밥을 말아 먹으면, 그 시원하고 담백한 맛은 무엇에 견주랴! 또 울진 사람치고 ‘꾸덕지’, 그러니까 미역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고팠던 시절! ‘덴뿌라’로 튀겨 도시락 반찬으로, 생꾸덕지는 간식거리로 먹었다. 씹을수록 달콤짭쪼름하고 진득한 감칠맛이 나는 특유의 먹을거리였다. 식재료가 풍부해진 요즘에는 소고기미역국, 들깨미역국, 조개미역국, 감자미역국, 황태미역국, 전복미역국, 가자미미역국, 성게알미역국 등 지역 특산물과 조합한 것이 많다. 미역은 독성 물질 배출과 혈액순환, 뼈 건강, 노화 지연, 복부지방 감소에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김이 최근 건강식품으로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역도 김처럼 건강식품으로, 산후조리 음식으로 좋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진다면 그 수요는 엄청날 것이다. 관련해서 러시아연방 국립과학센터(SSCRF)산하의 생물연구소(IBMP)는 우주인의 식단으로 불고기, 비빔밥과 더불어 미역국이 최종 인증 평가에 통과되었다.

전문 연구기관에서 미역의 효능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다에서 온 생명초인 초록빛 보약 미역국! 지역별로 여러 가지 미역국이 개발되는 것처럼, 울진에서도 건조 미역, 생미역만 팔 것이 아니라 울진특유의 조리된 음식으로서 상품화가 필요하다. 『고래가 준 선물! 울진 미역!』 이런 표어로 새롭게 탈바꿈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