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스님(이규훈)


 

부모 없는 자식 없듯,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라지기야 하겠는가! 다만 어른들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빈자리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보고자 한다.

도시화는 가족형태의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우리사회의 주거는 부부중심의 핵가족이다. 하지만 집안대소사는 여전히 대가족의 질서를 따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같은 집에 함께 살지도 않고 만날 기회조차 없는 조부모가 어떤 일에 갑자기 나타나 최고의 권위와 결정권을 가짐으로 갈등이 일어난다.

전통사회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엄격한 부모를 보완하는 사랑의 피신처요! 온갖 투정을 받아주는 다정한 친구요!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무궁무진한 지혜를 전해주는 선생이었다. 특히 아이중심사회라는 독특한 전통을 지켜온 한국인의 정서에서 조부모의 역할은 매우 컸다. *아이중심사회-한국인은 대를 잇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다.

설령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 계시거나 함께 살지 않더라도 삼촌, 고모, 이웃집 할머니 아주머니 등등이 공동육아의 형태를 취해왔다.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어서 더욱 걱정스러운 청소년 자살문제 등은 자녀와 부모 간의 소통단절을 해결해주는 다른 가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더구나 친구마저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교육환경에서 청소년의 심리단절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동네 6살배기 말썽쟁이 녀석이 엄마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한다. 신기해서 은근히 물었더니, “엄마한테 잘못 보이면 인생이 괴로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했다. 어이가 없어 자초지종 따져보니,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부모를 철저히 속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냥 넘어가고 있으며, 이미 마음을 터놓기 어려운 벽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핵가족에 있어 부모의 역할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심각한 고민이 없음을 반증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정서에서는 당연한 듯 보이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대가족의 질서 속에 살고 있다. 그만큼 핵가족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적다는 것이다. 직접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 소개되는 내용을 미루어 보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라는 TV프로가 이러한 문제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초등학교 6학년쯤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고, TV가 보급되면서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옛날이야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옛날이야기)은 옛 어른들의 교육방식을 담고 있다. 다소 황당한 부분도 있지만, 재치 넘치는 해학과 번뜩이는 지혜에 담겨있는 교훈은 요즘의 코미디와는 다른 격조를 보여준다.

구비문학은 같은 내용이 장소와 배경을 달리하여 전국에 산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서사시가 그렇듯이 옛날이야기는 요즘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했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아이가 아플라치면 가장 먼저 동네 어른들께 여쭙는 게 상식이었다. 짐승들이 경험 많은 우두머리를 따르는 것처럼, 이것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선생(先生)이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설하면 “먼저 태어나다”이며, 부모는 최초의 선생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선생님의 선생님이시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인터넷, 경험으로 도저히 체득할 수 없는 다양성, 발달된 교육제도와 전문지식, 날로 쏟아지는 정보 등등으로 과거 선생님의 역할을 했던 어른들의 설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더하여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전환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다.

필자 역시 말로서라도 뾰족한 수가 없다. 다만 이 글이 소외되고 있는 어른들께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랄뿐이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