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스님(이규훈)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왕도정치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이 탄생되었다.

권력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힘이며, 정치란 권력을 다루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의 근본은 권력집단의 도덕성과 양심이다. 일체만물 모두가 그렇듯이 권력 역시 자성(自性)이 없다. 다만 다루는 자들에 의해서 선과 악으로 발현될 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9차 개정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같은 헌법 아래서 여러 정부가 지나갔고 바뀔 때마다 사회가 요동쳤으며,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에 의해 무능과 부패를 심판 받았다. 이처럼 법을 집행하는 권력집단의 도덕성과 양심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달라진다.

민주주의는 선거로서 권력을 선택할 수 있지만, 왕도정치는 권력집단의 양심과 도덕성에 의존한다. 그래서 왕도정치에서 도덕성은 권력을 유지하고, 권력내부 집단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 된다.

조선의 3대논쟁이라고 하는 ‘사단칠정논쟁’ ‘예송논쟁’ ‘호락논쟁’은 인간의 본성과 도리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발단이 되었다. 이같은 철학적 논쟁이 조선사회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정치의 명분이자 왕도정치가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목민(牧民) 즉, 정치는 군자가 자신의 공부(수양)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최고의 덕목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은 개국이념을 임금이 거주하는 수도에 상징물을 세워 나타내었다. 그 가르침은 현재에도 유효하며 미래에도 이어져야 한다.

유학에서는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을 오상(五常:仁.義.禮.智.信)이라 한다. 오상에 따라 도성의 동쪽에는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에는 돈의문(敦義門), 남쪽에는 숭례문(崇禮門), 북쪽에는 홍지문(弘智門)을 세우고 가운데는 보신각(普信閣)을 두었다.

흥인지문의 인(仁)은 ‘측은지심’으로써 불쌍하고 어렵고 부족한 부분을 돌보라는 것이고, 돈의문의 의(義)는 ‘수오지심’으로서 자신의 허물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며, 숭례문의 예(禮)는 ‘사양지심’으로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북쪽의 홍지문의 지(智)는 시비지심으로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보신각의 신(信)은 인의예지에 바탕을 둔 굳건한 신념이 ‘광명지심’으로 발현되어 온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종을 달아 시간에 맞추어 쳤다. 왜 밝음을 상징하는 광명(光明)을 소리로 표현 했을까? 그것은 빛에는 그림자가 있고 막힌 곳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소리는 빛이 닿을 수 없는 구석구석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아침저녁 종을 치며 “이 종소리가 온 우주에 널리 퍼져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지옥마저 사라져서 단 한 중생도 빠짐없이 행복에 이르기를…,….”하고 발원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

오상에서 인의예지는 개인의 수양과 근본에 해당하는 체(體)이라면 신은 그것이 온전히 들어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용(用)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인의예지를 갖추면 신은 자연스럽게 들어난다.

여기에 빗대어 인간성이 부족한 사람을 네 가지의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하여 “네가지 없다.” “싸(사)가지 없다.” 라고 말한다.

이와 달리 ‘싸가지’라는 단어는 움트는 ‘싹’과 동물의 새끼를 뜻하는 ‘아지’가 합쳐져서 ‘싹수’를 뜻하므로 “싸가지가 없다”는 ‘가능성이 없는 놈’을 뜻하는 비속어라는 견해도 있다.

싸가지의 어원이 어떻든 간에 인간이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덕목을 말한다. 그래서 정치에 나서는 사람은 싸가지를 갖추어야하고 유권자들은 싸가지가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사회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