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 논설위원)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그냥 집에서 쉬고 있지. 들에도 더러 나가고, 농사지으세요? 하기야 밭떼기에 채소 따위를 조금 심어 놓았으니 농사할 수 있겠지. 내가 농사짓는다? 머리가 하얗게 되었네요. 그렇지 백수지, 그야말로 백수지, 하하하!』 가끔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말이다.

필자는 공직에서 퇴직한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퇴직한지 5,6개월간은 참 자유로웠다. 출퇴근 시간, 복장, 업무 등에서 벗어나 늦잠도 자고, 아점을 먹고, 꾸물거리다 거리에 나가거나 볼일을 보기도 했다.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 『석양일배』로 기분 좋게 백수퇴근도 했다.

초보농사꾼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밭에 나가는 부지런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백수도 과로사 한다고 처음엔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평소 육체노동에 대한 단련이 없어 그렇다. 요즈음은 취미생활을 한답시고, 친구와 함께 다니기도 한다. 퇴직백수들의 주 활동은 건강을 챙기는 운동과 각종 취미활동, 봉사활동, 제2창업 등이다.

그간 국가사회, 가족들에게 그 의무를 다했으니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다시 도전하여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와 같이 퇴직한 동문들 중 전국을 도보로, 자전거로 일주 시도를 하거나 완주를 한 친구도 있었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백수로서 지금은 또 다른 일에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백수(白壽) 라는 낱말은 일본식조어이다. 아흔아홉(99세) 장수를 뜻하나 요즈음은 백수 (白手:흰손) 『무직자』를 말한다. 백수도 급이 있단다. 1급(화백), 골프, 여행 등을 즐기는 『화려한 백수』, 2급(반백) 골프, 여행 등 한쪽만 즐기는 『반쪽 백수』, 3급(불백), 집에서 칩거 하고 있다가 누가 불러주면 나가서 밥 같이 먹는 『불쌍한 백수』, 4급(가백) 주로 집에만 칩거하면서 손자들이나 봐주고, 마누라 외출시 집 잘 보라고 당부하면 "잘 다녀오세요. 라고 답하는 『가련한 백수』, 5급(마포불백)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등이다.

나는 몇 급 백수일까? 어쨌든 필자는 비속어 같은 삼식이 (종간나새끼-삼식(세끼도 모자라 종일토록 마누라에게 간식달라고 투정하는 백수를 말함.) 백수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 백수론으로 3백을 주장하고 싶다.

첫째 백수(白首), 머리가 하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최근 머리 염색을 그만 두었다. 신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늙어가자. 그렇지만 정신만은 늘 새롭게, 타인과 공감하여 어울리기, 소통 등을 게을리 하지말자. 둘째 백미(白眉)이다. 말 그대로 흰 눈썹의 사나이, 그 유래는 삼국지의 인물 마량으로 무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뜻한다.

나는 이것을 취미활동에 적용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여 자기 역량을 최고로 발휘 해보는 것, 내가 아는 분 중에는 서예, 미술, 색소폰 연주, 백두대간 종주도전 등 70대에 입문하여 프로 못지않은 분들도 있었다.

92세에 등단한 일본의 여성시인 시바타도요 할머니! 99세에 시집 『약해 지지마』를 발간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가 쓴 시 한편 소개한다. 『저를 할머니라고/부르지 말고/오늘은 무슨 요일?/9+9는 얼마?/그런 바보 질문도 하지 않았으면 해요/시바타씨 사이죠야스의 시를 좋아해요?/고이즈미 내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이런 질문이라면 좋겠어요.』 셋째, 백일(白日) 하얀 날, 맑은 날을 뜻한다. 이처럼 밝고, 맑고, 젊게, 건강하게 따뜻한 햇살처럼 살아가자 것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 의기소침 하고, 세상일에 무관심,무감각,무감동 해지기 쉽다. 새로움을 찾아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젊은 날의 서른 잔치도 끝나고, 새 울고 꽃피던 아름다운 봄날도 갔다. 퇴직백수의 봄날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또 다시 꽃 피울 수 있다. 곱게 늙어가는 이를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인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도리어 새로움이 있다. 곱게 늙어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는 않다. 백수의 원숙함을 보여주자.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노년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자면 건강,경제력,일,친구,꿈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 온갖 것이 의미가 없다. 다음은 경제력이다.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 한다면 이제는 돈을 벌 때가 아니라 돈을 쓸 때이다. 돈 없는 노년은 서럽다. 그러나 돈 앞에 당당 하라.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자. 죽을 때까지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사랑과 일이다.

친구가 있어야 한다. 백수 노년의 가장 큰 적은 고독과 소외다. 함께 취미 생활 등 시간을 함께 보낼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두자. 노인의 꿈은 죽음 등 내세에 대한 소망이라고 한다. 신앙,명상,자기수행,수련이 아니라도 자신의 하루 일과를 조용히 되돌아보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만국의 백수여! 백수도 명예로운 직업군이다. 오늘도 삼백의 정신으로 사랑,기쁨, 행복,웃음 가득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백수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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