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희의 창가에 앉아 (29)


 

 (- 최홍수 군의 영전에 바친다 - )

남 먼저 떠나가 버린 친구야 !
내가 너와 너의 딸과 다른 친구와 자리를 함께하면서, 지나가는 한 해를 되돌아보고, 그동안 일에 부대끼며 생활에 시달리며 쌓인 피로를 떨쳐버리기도 할 겸, 서로의 친목도 도모할 겸, 모처럼의 즐거운 자리를 이곳 서울에서 마련한 것이 벌써 일 년여 전의 일이 되었는가.

그 이후에도 대구에서 너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머지않은 미래에 갑자기 너가 이승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아닌 거의 확정적인 예고 속에 아프고 불행한 신병 소식을 전해오더니, 이제 얼굴조차 보지 못할 영원한 나라로 떠나가 버리고 말았구나 !

한 번 태어난 자는 반드시 세상을 하직하여야 한다는 것이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선고이기는 하지만, 뜻을 세워 힘들게 갈고 닦아 이 세상에 사는 진리를 어렴풋이나마 터득하고, 흔들림 없이 천명을 추구하고자 하는 나이에 포부를 이루지도 못한 채 사랑하던 자녀들과 아내에게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남기고 홀로 영면해 버린 지금, 우리는 세상의 덧없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구나.

무엇보다도 몇 년 전에 학원 선생직을 마무리 짓고 입학사정관이라는 새로운 일터에 몸담아 ‘대학 진학’의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을 최선을 다해 지도하던 너에게, 같이 모여 우정을 나눌 기회를 친구들이 마련한 것이 다행이구나.

정리가 되고 상태가 좀 나아지면 다시 연락하여 만나자고 한 것이, 예전에 대구에서 만나, 이제는 너의 유택지가 되어버린 그곳의 어느 조용한 식당에서 친구들과 미리 준비해 온 전복을 초고추장에 맛있게 찍어먹고 안개 낀 공원을 차로 한 바퀴 돌며 기꺼워하던 너의 모습이 대구에서 함께 보낸 마지막이 되어 버렸구나.

포악한 병마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병세가 호전되면 찾아오고 지금은 조용히 있게 해달라는 너의 당부만 속절없이 믿고 문병을 가자고 성화를 하는 보이지않는 마음속의 아우성들을 오히려 달랜 것이 더욱 면목없게 만드는구나.

어차피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이고, 생의 즐거움은 괴로움 중에 잠깐 비치는 장마 때의 햇살 같은 것으로서, 회생할 수 없는 병고로 오랜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길이 편안함에 드는 것이 다행스러울 수도 있다는 말로 유족들이나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반려자의 저승길을 노래와 춤으로 배웅한 선현의 초탈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다시는 너에게 전화를 하여야 할 일도 없고, 손을 잡아 볼 수도 없고, 수십 명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모임을 마련할 길도 없음에, 비통한 마음에 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응하여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세상의 근심, 걱정을 망각해 버린 수야 ! 우리는 오늘 마음속 너의 자리에 꽃 한 송이를 놓아 자리를 함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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