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스님(이규훈)

 

선거를 통해 4년 임기의 공직자들이 선출되었다. 공직이란 ‘사사로움을 내세우지 않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무사(公平無私)의 마음으로 임하는 업무를 말한다.

공평은 중간 또는 중립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원인도 없고, 인연도 없는 가운데 진리를 따른다.’ 하여 무인무연(無因無緣)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상태에서 좋은 일들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무인무연은 우주 삼라만상이 때가 되면 자연히 드러났다 사라지듯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무공용작사(無功用作事)에 이르게 된다.

어느 노스님 일화로 공평무사에 임하는 공직자의 자세를 이야기 해볼까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노스님은 절의 농토를 팔아서 시자와 함께 겨우내 황무지를 개간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다 보니, 개간을 하려고 파는 땅보다 새로 일구는 땅이 적었다. 해가 갈수록 절소유의 땅은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날 노스님은 ‘매년 고생은 죽도록 하는데 오히려 땅은 줄어든다.’고 불만이 가득한 시자를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들판을 바라보며 자 보아라! 농사짓는 땅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지 않느냐고 물었다. 허나 공부가 부족한 시자는 여전히 불만이 가시지 않았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는 노스님의 수행에서는 분명히 농토가 늘어났고, 절소유의 땅에 집착하는 시자의 소견에서는 전답이 줄었다. 이것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양쪽 다 맞는 말이니, 시비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조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공직자는 노스님과 같은 마음으로 공무에 임하고, 시자가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시자의 불만처럼 공평무사는 결코 칭송받는 일이 아니며, 때로는 지탄과 비난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세상이라는 것이 미세먼지를 걱정하면서도 자동차를 타야하고 공장을 가동해야 하며, 매일 쓰레기를 배출하면서도 우리 집 앞은 언제나 깨끗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공평무사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연에 실패하듯, 어쩌면 불가능할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미 상원 영양문제 특별위원회 보고서」는 엄격히 따지면 의학적으로 성인병이라고 하는 고혈압, 당뇨, 암 등은 병이 아니라고 한다.

병은 외부로부터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침입을 원인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성인병은 식사와 생활습관 등이 원인이 되어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전자가 몸이 더 이상 유지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자연으로 되돌아가려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금연, 금주, 다이어트 등은 개인의 의지로서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매번 실패한다. 이렇다보니 “먹어서 살이쪘는데 먹어서 뺀다.”는 전혀 비상식적인 다이어트요법 등에 열광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당연한 일도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사회의 변화는 오죽하랴.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공평무사를 요구했다. 역사 속에서 권력에 도취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영웅호걸, 현재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 등등, 다만 엄준한 공평무사의 법칙이 자신은 비껴갈 것이라는 무지와 요행심이 눈앞을 막고 있을 뿐이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촛불혁명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공평무사가 실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세계는 촛불시민이 선택한 정부를 눈여겨 보고 있다.

그래서 개인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공평무사의 마음을 기르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는 공평무사를 실천하는 공직자를 길러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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