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스님(이규훈)

 

지난 <사라져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서 짧게 언급했던 ‘아이중심사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려고 한다.

겉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나이, 촌수, 사회적 지위 등이 일상전반에서 우선되는 서열이 분명한 어른중심의 사회이다. 그래서 아이중심사회라는 견해는 쉽게 동의를 얻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다툼이 불거지면 문제의 원인은 사라지고 전혀 엉뚱하게 ‘너 몇 살이나 먹었어’, ‘나이도 어린놈이’, ‘어린놈이 너무 심하다’ 등으로 결말이 나는 것처럼, 어리다는 이유로 약자가 되어버린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말은 다른 언어에 비해서 존비어(尊卑語)체계가 엄격하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배우면 자신도 모르게 서열문화에 길들여진다고 한다. 이것은 영어교육이 자연스럽게 미국은 강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나라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여기에 대해 언어교육을 통한 문화지배라는 견해를 눈여겨 볼만하다.

우리말의 존비어 체계는 한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았을 때도 ‘진지를 드시는 분’, ‘식사를 하시는 분’, ‘밥 먹는 사람’, ‘처먹는 인간’ 등으로 구분한다.

이것이 사회에서는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사이가 갑자기 신분계급이 달라지는 심각한 일로 전개된다. 그것도 예의바른 아버지에 의해서 말이다. 가족동반 회사야유회 등에서 대부분 “사장님 아드님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제 자식 놈입니다.” 하고 소개하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서 나이에 의한 서열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재벌 2세가 아버지 연배의 직원에게 거리낌 없이 하대하는 것처럼, 사회적 지위와 서열이 업무가 아닌 일상은 물론 평생 동안 이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대에서의 선임과 후임이라는 서열이 평생을 간다. 서열문화는 존비어체계가 발달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 바탕에 있어서 일본과 우리는 결이 다르며,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중국은 존비어체계가 뚜렷하지 않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일본은 사무라이라는 소집단이 구역 구역을 지배했기 때문에 위력(威力)에 의한 위계질서를 이룬다. 반면 우리나라는 5일장을 단위로 수 백 년을 이어오는 각각의 집성촌들이 혼맥(婚脈), 학맥 등으로 연결되면서 가문과 혈연이 중시되는 도덕적 서열이 강화되었다.

현재 중국이라고 불리는 땅은 200여개의 제후국들이 경쟁했던 춘추전국시대를 이은 5호16국시대 등에서 보듯이 사회가 불안정했고 짧은 왕조만큼이나 변동이 심했다. 자칭 영웅호걸이라는 제후들이 자기가 최고라며 전쟁을 벌이는 통에 피난 다니기 바쁜 사회에서 존비어체계가 만들어질 시간적 여유가 없다. 첨언하면 공자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노나라 사람이다. 이렇게 보아야 중국역사의 이면이 분명해진다.

인류역사에서 우리나라처럼 안정적이고 치밀하며 촘촘하게 짜인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에서 서열의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기득권이 보장됨을 말한다. 이 같은 민중의 열망을 통치자들은 잘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긴 시간 안정된 왕조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조선사회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일 중에 하나가 자손이 출세하여 조상의 묘를 고쳐 쓰는 일이다. 일정 이상의 벼슬에 오르거나 나라에 큰 공을 세우면, 증조까지 증직(贈職)이라 하여 벼슬을 하사한다. 격에 맞게 묘를 고쳐 쓰고 죽어서도 신분이 상승되는 영광을 누렸다. (살아 있을 때는 봉작;封爵) 일반백성도 90세가 넘으면 벼슬을 내려 효(孝)를 통한 통치를 강화했다.

조선사회에서는 자녀의 출세는 삶의 전부가 달라지는 신천지로 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고, 부모들은 여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겉으로 들어나는 서열문화의 높이만큼이나 내면으로는 집착에 가까운 아이(자식)중심의 문화가 웅크리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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