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문화원장의 울진민담순례 (1)

 

금년 삼복은 유난히도 덥다, 더구나 짊어진 소금이 더위에 녹아 내리는지 갈수록 더 무거워짐을 느낀다. 북면 흥부장에서 소금을 한포대 사서 짊어지고 봉화 내성 장으로 팔러가는 보부상 김공(金公)은 인적 없는 산중 고개를 혼자 넘고 있었다.

덥고 무거운 짐 때문에 걸음이 느리다 보니 일행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주막은 멀었는데 어느새 어둑어둑해진다. 인근에 민가가 있나 아무리 살펴도 풀벌레 소리만 날 뿐이다. 이 첩첩 산중에 밤에 짐승이라도 만나면 어찌할 것인가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하다.

몸은 천근같고 갈 길은 멀고, 하늘은 캄캄하고,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살기지. 내가 이 고개를 넘은 것이 어디 한두 해냐? 보부상 팔자 죽는 들 대술까. 에라 아무데나 누우면 안방이지.

마침 길옆에 잔디가 잘 자란 무덤이 하나 있어 지게를 벗어 세워놓고 그냥 길게 자란 잔디위에 눕는다. 풀이 잘 자라 푹신해서 좋다, 종일 짐지고 걸었더니 눕자마자 코를 곤다.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가 묘턱에 쉬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보게 할멈. 오늘 내 제삿날이니 아들집에 제사밥 먹으로 가세” “ 영감 나는 다리가 아파서 안 갈라요. 당신 혼자 갔다 오소”
“ 그려. 그럼 내 혼자 가서 맛있는 거 마이 먹고 싸오께” 할아버지는 아랫 동네 아들집에 제사음식 먹으러 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 아이 뭐 벌써 왔소? 몸 보신 좀 하고 오시지?” “ 몸 보신이 뭐여. 하나도 안 먹고 그냥 왔네”

“왜요?” “ 첫 숫깔 뜰려하는데 국에 구렁이가 한 마리가 빠졌잖소. 그래 속이 얼매나 상한지 안 먹고 그냥 왔네” “ 구렁이가 국에 왜 빠지노?” “ 아 ! 있잖아 국에 머끄댕이가 빠졌다니께”
“쯪 쯪 아들이 제사 음식을 정갈하게 채려야제. 그래도 좀 잡숫고 오시지 그라요” “ 괘씸해서 얼라가 옆에 있길래 화덕에 확 밀었뿌리고 왔네” “ 뭐라꼬요? 얼라가 누구요? 우리 손자아이요? 얼라를 화덕에 빠주면 되나?”
“내가 보이 마이 안 다치고 다리가 쪼매 뎃더라” “ 아이고 아무리 심술이 나도 손자를 화덕에 밀치는 할배가 어딧노? 빨리 웅굴 물청태를 걷어다가 바르면 직빵인데....”

 

얼마나 잤던가 눈을 뜨니 동쪽 하늘이 훤해 지기 시작했다. 김공은 얼른 일어나 걸음을 재촉했다. 소금은 일찍 거래가 되기 때문에 빨리 장에 당도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잠 자고 났더니 걸음걸이가 어제보다는 한결 가볍다. 잰 걸음으로 가파른 재를 내려 가다보니 얼마 안가 민가 한 채가 보이는데,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무슨 일이 있나? 가만히 보니 부녀자들이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이 간밤에 제사를 올린 모양이다.

옳지. 엊저녁도 굶었는데 국 한 그릇 얻어먹어야 되겠다. 체면불구하고 집안에 들어서니 어린 아이 하나가 죽는다고 울어싸서 경황이 없다.

김공이 가만히 생각하니 이상했다. 간밤 꿈에 나온 그 집 아닌가? 그래서 아이가 왜 우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불에 데었단다. 그럼 엊저녁에 제사를 지냈느냐 하고 물어보니 그걸 어찌 아느냐고 되묻는다. 아이가 어디서 불에 데었냐고 물어보니 화덕에 빠졌단다.

“옳거니 엊저녁 그 노친네가 말하던 그 집이로구나”
그래서 꿈에서 들은 대로 “ 빨리 우물 돌에 붙은 청태를 걷어다가 발라주쇼”라고 처방을 해 주었다. 어른들이 마당의 우물에서 청태를 걷어다 상처에 바르고 싸매주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금새 울음을 멈추었다.

이상하게 여기는 아이 부모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 부모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정성이 부족한 자신들의 부주의에 몸둘 바를 몰라하며, 한상 그득히 아침상을 봐 주었다. 그날 이후 김공은 그 집의 돛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울진 십이령 보부상 관련 전설로 제보자 엄금옥 (82세) 할머니가 어릴 때, 친정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고향이 북면 금성리이며 북면 소곡리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거주하는 분입니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