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 논설위원)

 

지금은 해바라기가 피는 계절, 올해도 내가 좋아하는 꽃, 해바라기를 밭 둘레에 수십 포기 심었다.

해바라기는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쑥쑥 잘 자란다. 큰 바퀴 모양 꽃이 올 같은 폭염에도 아랑곳 않고, 그보다 더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양새도 일품이다.

하지만 내가 해바라기를 심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마음의 어떤 보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작은 몸이 콤플렉스였다. 언제나 키 크고 덩치가 큰 아이들이 부러웠다.

초등학교 시절, 조회시간에 줄을 섰는데 나는 어쩌다 중간쯤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동무가 『너가 왜 여기에 섰어? 키 작은 사람은 앞에 서야지』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선생님도 그걸 알고 나를 앞쪽으로 이끌었다.

요즘은 학생인권을 존중해 출석번호도 가나다순으로 하지만, 그때는 줄서기도 출석번호도 키 순서대로였다. 내가 앞쪽으로 옮김에 따라 내 뒤부터 선 아이들은 다시 뒤로 밀려 나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얼굴이 빨개진 건 물론이요, 반 아이들 눈총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때 우연히 학교 꽃밭의 키 큰 해바라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조회시간 내내 해바라기만 본 것 같다. 해바라기를 좋아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이와는 또 다른 해바라기 동심도 있다. 아동문학가로 우리말과 우리글 살리기에 앞장섰던 고 이오덕 선생(1925-2003)이 엮은 어린이 시집『일하는 아이들』에 이런 시가 있다.

오줌이 누고 싶어서/변소에 갔더니/해바라기가/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나는 안 비에 줬다. <내 자지>, 안동 대곡분교 3학년 이재흠 (1969. 10. 14.). 이 시의 배경은 1960년대 말 조그만 산골분교이다. 어떤 녀석이 변소(요즘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다 보니, 아니 변소 밖에서 해바라기란 놈이 나 모르게 고개를 내밀고 내 꼬추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비에(보여) 주지 않았다는 것.

이재흠 군이 쓴 <내 자지>는 동심의 극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일하는 아이들』에는 농촌아이들의 맑은 동심과 생활상을 담아 쓴 시들이 가득하다. 40년 전 시 감상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이 시를 읽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 기억이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 시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이 시를 동심과 달리 식물학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다.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움직이는‘해굽이성’식물로 알려져 있다. 해바라기에‘열렬한 사랑(애모)’이란 꽃말이 붙은 까닭이다. 하늘 해가 가까운 고원지대에 사는 페루 사람들은 해바라기를 아예 나라꽃으로 삼았다.

해바라기는 거름을 충분히 주면, 보통 1미터에서 아주 큰 것은 3미터 이상으로 쑥쑥 잘 자란다. 키도 크지만 꽃 지름도 3-40센티로 다른 꽃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줄기는 억세고 단단하고, 잎은 심장 모양으로 20센티도 넘는다. 해바라기를 넓은 면적에 무리지어 심어 놓으면 꽃피우는 그 모습이 장관이다.

이런 해바라기의 특성을 활용해서, 강원도 태백시 등에서는 해바라기꽃 축제를 십년 넘게 열고 있다. 울진군도 근남 왕피천 공터에 해바라기 꽃밭을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햇살보다 환한 황금빛을 선사하고 있다.

해바라기 꽃은 이중 꽃이다. 커다란 겉 꽃이 있고, 촘촘히 박힌 씨알 하나하나가 작은 꽃들이다. 또 하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은 씨앗이 들어찬 모양에는 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씨를 품는 수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는 가지런하게 나선형으로 박힌 해바라기 씨앗을 보고 앞의 두수의 합이 바로 뒤의 수가 되는 원리를 발견했다.

해바라기는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식물들이 자연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그 나름의 생존전략이 놀라울 따름이다. 질서정연하게 촘촘히 박혀 있는 해바라기 씨앗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치 소우주를 보는 듯하다.

해바라기 씨앗이 익어갈 무렵에는 어디서 몰려오는지 참새를 비롯하여 온갖 잡새들이 와서 파먹고 간다. 들새는 소우주에 숨은 원리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생물의 본능적 욕구를 드러낸다. 좀 우스운 이야기이나 어느 해 그놈들을 쫓느라 수십 포기 해바라기마다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귀신같은 새들은 금세 비닐봉지 틈새를 찾아 달려들었다. 새들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은 것은 햇볕을 받지 못한 쭉정이가 태반이었다. 올해는 욕심 부리지 않고 들새 먹이가 되도록 그냥 두려한다. 새들에게 들려줄 말도 준비해뒀다.
‘새들아, 마음껏 와서 쪼아 먹어라. 약속 하마, 소우주에 비닐봉지 씌우기 같은 추한 짓(?)은 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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