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이 만난 사람 (4) 장영각 세무회계사무소장



철저히 공정했던 국세청 조사관 출신

부지런하고 성실히 그리고 긍정적으로


 


서울의 용산은 음양(陰陽)이 조화로운 명당으로 옛날부터 첫손에 꼽혔다.

그러나 구한말부터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서 상당한 땅이 군용지로 묶여있던 탓에 용산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서울시청을 용산구에 옮기려다 실행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옮겨가면서 용산은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핫(hot)한 곳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한가운데 용산세무서가 있고 세무서 정문 바로 옆 3층 건물에 <장영각세무회계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장영각 소장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도시사람이다. 희고 말끔한 외모에 자연스럽게 웃는 미소가 마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준다. 게다가 잘 웃는다. 외모로 보아서는 부유한 집안에서 충분한 영양과 좋은 교육을 받고 세무공무원을 지내다가, 세무사무소를 개업하여 ‘부족’ 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을 같은 사람의 얼굴이다. 아마도 서울의 울진사람들 가운데 이분을 아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장 소장을 만나고 나서 이분께 그런 힘든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1954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용장)에서 지금은 작고하신 부친 장원석氏와 모친 주두녀 여사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나고 자랐다. 형편이 어려워 겨우 중학교만 마치고 서울로 상경했다. 인쇄기술을 배워서 끼니라도 해결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서울로 유학을 가는 것은 꿈도 못 꾸지만, 그래도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데이, 하시면서 어머니는 어린 저를 무작정 서울로 떠나 보내셨어요.” 당신은 서울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면서, 서울에는 학생이 손에 돈을 들고 다니면 날치기꾼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훔쳐 간다며 내복 안쪽에 주머니를 만들어 차비며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넣고 기워주셨다.

그래도 어린자식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웠던지 잠이 들 만하면 흔들어 깨워놓고, “너 서울 가서 정말 잘 할 수 있겠나?”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두 모자(母子)는 그렇게 날밤을 보냈다. 이튿날 한손에는 책가방과 다른 손에는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준 삶은 달걀 보따리를 들고 북평역에서 교복차림으로 청량리행 기차를 탔다.

기술을 배우려 해도 당장 먹고사는 것이 급선무라 우선 고향 선배가 운영하는 식당에 취직했다. 나중에 주방 일을 배워보겠노라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다. 1970년대 초반 식당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대하는 손님들의 시선과 편견은 비참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방기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참아낼 각오였다. 그러나 주방 일을 돕다가 화상을 입는 바람에 그마저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너무너무 가고 싶었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떻게 해서든 먹을 양식은 보내줄 테니 혼자서라도 가능하다면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고향 선배와 작은 누나의 도움으로 방을 얻어 독학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공부 능력이 있었던지 공부가 그만큼 절박해서였던지 곧바로 유한공고에 합격했다.

유한공고는 유한양행의 고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학교로 당시에는 학비 전액을 재단에서 부담하였다. 전국에서 인재들이 모였고 한 학년이 250명에 불과하지만 공고 중에서 판검사 및 의사 배출 1위, 서울대 진학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 장 소장은 전교 1등이었다.

유한공고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학생은 장래가 보장되는 모범생으로 학교생활 또한 당연히 즐거웠을 것이라 다들 짐작한다. 그러나 의외로 장 소장은 공업계열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장 소장은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여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자퇴를 하는 과정에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전교 1등이 자퇴를 한다고 하니 교장선생님이 난리가 났다. 처음에는 절대로 허락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조건을 제시했다. 당시에는 기능올림픽 때문에 기능대회 경쟁이 치열했는데 서울시 전체 공업고등학교 기능대회에서 입상하여 학교의 위상을 높여주면 전학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장 소장은 1등을 하였고 서울성남고등학교 전학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전학을 하는 대신 곧바로 검정고시를 치러 합격했다. 게다가 대학을 가려고 준비하는 과정에 장난삼아서 본 세무공무원 시험에 떡하니 붙었다. 원래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야간에 진학하고 부모님의 권유로 세무공무원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2000년 12월 31일 국세청 행정사무관으로 퇴직할 때까지 24년 간 근무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교 암산대회에서 대표로 뽑혔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수리(數理) 쪽이 발달했던 것 같다고 장 소장은 말했다. 수학 쪽으로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으니 국세청 세무공무원이 된 후로는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사실은 국세청에 근무하면서 업무 스트레스로 당뇨병까지 생겼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끔찍할 정도로 힘들게 일했습니다.” 장 소장의 사무실에는 두께가 엄청난 세무서적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책속에 묻혀 살다시피 공부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국세청 핵심에 해당하는 본청 조사국에서 4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세무조사라는 말은 왠지 거부감이 드는데 하물며 큰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국세청 본청 세무조사관은 여간 불편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당시 세무조사를 받았던 기업체 대표는 장 소장이 개업한 후로 지금까지 주요고객이 되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 때 세무조사를 받았던 대표는 작고하여 자제들이 사업을 이어가고, 500억 규모였던 매출이 지금은 2,500억이 넘지만 여전히 장 소장에게 세무를 맡기고 있다. “철저히 공정한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것이 공무원입니다.”

“항상 다짐을 합니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람과 사물을 대하자. 매일 이 세 가지를 되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울진 출신 중에 국세청에 근무하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장 소장이 국세청 재직시 많은 울진분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애로사항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울진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덕분에 군민회, 면민회 등에 참석해온 지가 20년이나 되었다며 웃는다. “고향 선후배님들과 만나고 일도 하고 놀기도 하는 것이 참으로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훌륭한 선배님도 많고 정말 본받고 싶은 후배님도 많아요.”

장 소장은 특히 재경울진경제인협의회(진경회)에 많은 정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데, 어렸을 때 그렇게 받고 싶었던 장학금을 고향 후배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운 고향분들에게 작은 온기나마 나눔의 정을 베풀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혼자 힘으로는 어렵지만 50여명의 진경회원들이 힘을 모으니, 규모가 커지고 가치 또한 큰 것 같아요. 이 글을 보시고 뜻있는 분들이 진경회에 많이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인상 좋은 미소로 웃는다.

나는 이번 장 소장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깊이 반성한다. 일반적인 경우 학업이 적성에 맞지 않은 청소년들은 방황을 한다. 공부를 포기한다든가 술 담배를 배운다든가 엇길로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린 나이에는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자포자기에 빠지기 쉽다. 장 소장이 남다른 점은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전교1등을 유지하면서 극복했다는 것이다.

또 세무공무원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당뇨병이 생길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견뎌냈다. 절박한 난관에 봉착했을 때,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그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듯 더 나은 길을 찾아낼 확률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포기의 유혹이 자신의 노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은 그렇게 만난 새로운 길이 내 인생이라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장 소장 역시 그곳에서 안주하거나 새로운 길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으리라. 그러나 노력으로 극복해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주요약력> 1977년 국세공무뭔임용/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국세청(본청) 조사국 근무/ 국세청(본청) 행정세무관/2001 세무사 개업. 주요 경력 및 상훈 국세청장 표창 및 서울지방국세청장 표창/ 용산세무서 국세심사위원 2회 역임/ 한국세무사회 공로상 수상 및 세무사고시회 이사 역임/ 조세의 날 국세행정 발전 공로상외 다수/ 용산세무서 납세자보호 위원회 위원장 피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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