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무언가 새로운 것을 지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것일까, 창작이라는 말 뒤에는 고통이란 단어가 달라붙는다.

그 고통은 원래 없던 것을 만들어낸 죄로 받는 벌이라고 한다. 그래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은 냉고병(冷苦病)을 앓게 마련이란다. 즉 춥고 배고프다는 소리다.

자녀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부모님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학과들인데 철학, 문학, 음악, 미술, 무용 등이 이 군(群)에 속한다. 그러나 요즘은 저작권 덕분에 잘만하면 대박이 날 수도 있어 예전 같이 반대가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고일어나면 통장잔고 앞자리가 달라져있다고도 한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가 밤새 전국 노래방에서 벌어들인 돈이란다. 오죽하면 ‘저작권깡패’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것도 같다. 노래는 불러도 돈이요, 들어도 돈인데, 도서관에서 책이 읽거나 대여를 해도 돈이 들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각설하고, 옛날에도 저작권이 있었다. 글재주로 인기를 얻고 그것으로 벼슬을 살았으니 누구의 창작인지가 당연히 중요했다. 고려시대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천재문장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글이니 재미로라도 들어둘만하다.

김부식과 정지상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자 문장가였는데 심각한 라이벌 관계였다. 한번은 정지상이 두 줄짜리 짧은 시를 지어 지인들에게 슬쩍 내보였다. 요즘 시대로 칠 것 같으면 샘플링을 만들어 전문가들의 호응을 살펴본 것이다. 琳宮梵語罷(림궁범어파)/天色凈琉璃(천색정유리).

내용은 이렇다. “깊은 숲속 절간에 염불소리 그쳐, 하늘빛은 유리구슬처럼 맑구나.” 인적 없는 깊은 산사(山寺)에 목탁소리만 은은하게 들린다. 이윽고 목탁소리가 멈추어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가을하늘은 유리구슬이라는 내용이다. 봉화군 청량사의 ‘유리보전’이 연상되는 기막힌 문장이다.

김부식은 이 샘플링이 얼마나 탐이 났던지 저작권을 자기한테 넘기라고 했지만 정지상은 끝내 거부를 했다. 김부식이 호시탐탐 정지상을 벼르고 있는데 묘청의 난이 일어났다. 정지상이 그 난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라이벌을 제거할 기회가 온 것이다. 김부식이 토벌 대장으로 묘청의 난을 진압하면서 그다지 죄가 크지 않은 정지상도 참살을 했다. 정지상은 억울했던지 음귀(陰鬼)가 되어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김부식이 어느 봄날에 시를 짓기를, 柳色千絲綠(류색천사록)/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이라, 즉 “버들 빛은 천 가지 실로 푸르고,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구나.” 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을 뺨을 후려치면서 “시가 산수냐,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네가 세어 보았느냐? 버들 빛은 실실이 푸르고(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桃花點點紅)로 고쳐라”고 했다. 김부식은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훗날 김부식이 산속 절간 화장실(解憂所)에서 큰일을 보고 있는데 아마 변비가 조금 있었나보다. 정지상의 귀신이 뒤에서 김부식의 음낭을 꼬나 잡고 묻기를,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낯빛이 붉은가?”라고 했다.

김부식이 대답했다. “저 건너 언덕에 물든 단풍이 내 얼굴에 비쳐서 붉다.”고 했다. 정지상 귀신은 음낭을 더욱 옥죄면서 “네놈의 가죽주머니는 왜 이리 무르냐?” 하자, 김부식은 “오냐, 네 아비 음낭은 무쇠였더냐?”하며 대꾸를 했다. 정지상의 귀신이 화가 나서 더욱 세차게 음낭을 옥죄는 바람에 김부식은 결국 절간 화장실에서 고환이 터져서 죽었다 한다. 참 재미있는 설화다. 이 가을 단풍이 물든 산사(山寺)를 구경할 때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을듯하여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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