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창간 27주년 정미애 작가 초대글


 


소나무에 대한 애정이 내 작품의 원천

“소나무가 나의 유년의 친구였다면, 현재는 나의 꿈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두천길과 십이령길의 금강송 숲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붓과 함께 춤을 추듯, 지난 일 년을 동고동락했다.”


기성면 구산리가 외가였던 나는 문득문득 소나무 숲이 우거져 아름다웠던 월송정의 추억을 떠올린다. 솔가지, 솔방울, 송진 냄새 가득한 월송정의 소나무 숲. 나무들 사이사이로 동생들과 깔깔대던 숨바꼭질이며, 솔숲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좇아 나무에 오르다가 미끄러져 떨어졌을 때도 진동하는 송진 향기에 하늘은 왜 그렇게 파랗던지...

그 숲에 어우러져 펼쳐진 동해 바다와 월송정 그리고 반짝이던 모래사장. 놀다가 지쳐 뉘엿뉘엿 집으로 돌아갈 때 불게 물들었던 그 저녁놀. 엄마의 마당 한편에 피워진 장작불에는 고구마 타는 냄새가 고소하고, 잉걸에 노릿노릿 익어가는 생선구이 냄새에 나와 동생 허기는 하늘땅별땅 각개별땅. 내 유년의 추억은 소나무 숲에 머물고, 나는 지금도 그 숲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내 아버지가 사랑했던 온정면 두실마을은 숲이 우거져 아늑하고 고요한 산골마을이다. 찻길이 닿지 않아 버스에서 내려 구불구불 산길을 한 참을 걸어 올라야 할배와 할매가 기다리는 집에 도착한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할매 품에 달려가면, ‘고사리 같은 다리로 걸어오느라 고생했다’ 며 손녀를 품에 안고 달래주던 내 할매. 곶감이며 군밤이며 뚝딱하면 나타나던 도깨비 방망이 할배. 아름아름 안아주고 쓰다듬던 사랑들이 아직도 가슴 속에 진하게 남아있다.

할배 할매 아버지의 추억을 찾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홀로 두실마을을 다녀온다. 마을회관에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옛 친구 분들도 만나곤 했는데, 근래 두 해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 찾아뵈어 죄송하기 이를 데 없다. 할배네 바로 뒷산 내 놀이터도 솔숲이 우거졌었다. 이래저래 내게는 소나무숲 속이 놀이터였으니 얼마나 호사인가. 그렇게 늘상 보아왔던 어린 시절의 소나무는 내 애정의 시작점이자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여태껏 열심히 소나무를 그려왔지만, 작가 세계가 그렇듯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소나무를 갈망한다. 절실해서 찾은 곳이 소광리와 두천길이다. 금강송이 가득한 숲길 여행은 또 다른 작품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내게 유년의 소나무가 나의 친구였다면, 현재의 소나무는 남은 나의 꿈이 되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두천길과 십이령길 그리고 소광리 금강송 숲은 경이로움 자체다. 이 신비로움을 과연 내 화폭이 어떻게 감당할까 고민을 거듭했다. 내 느낌에 충실하기로 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붓과 함께 춤을 추듯 내 친구 소나무와 지난 일 년을 동고동락했다. 솔숲의 정서는 내게 넘치도록 사랑을 주었다. 한그루의 소나무를 보고 있자면 강인한 남성의 풍미가 느껴지는데, 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면 숭고한 어머니의 품속같이 고결하고 따뜻해진다.
 

구상과 비구상으로 연결된 그림 속에서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실체는 산양이다. 그러나 수십 번의 산행에서도 나는 산양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갈망이 꿈을 꾸듯 수많은 산양들이 그리운 생명체로 내면을 파고들었다.

내 그림속의 산양은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소나무 숲속의 잠든 소년이고 싶었다. 엄마의 품처럼 따뜻한 소나무와 솔숲을 환히 비추는 달이 함께 있어 행복하다. 함께 미래의 꿈과 희망을 안고 있다. 달과 소나무 그리고 물고기. 산양, 산새, 풀잎.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기에 나는 이들을 품고 싶다.

 


※ 追添- 천혜의 절경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내 고향 울진.
그 고향 소식을 가득 싣고 달려와 준 울진신문이 어느새 28주년이 되었다니, 축하드린다.
고향의 향기가 묻은 소식과 일상의 에피소드 첨가- 그리고 다양하고 알찬 칼럼들,
특히 출향인들의 애틋한 고향사랑이 잔잔하게 다가오는 명사들의 기고(寄稿)와 역경을 이겨낸 기업인들의 삶 이야기 등은 독자로 하여금, 울진신문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애독자의 한사람으로 좋은 글 감사드리며, 창간 2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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