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스님(이규훈)

 

평당 1억을 호가하는 100억짜리 아파트가 거래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좋기에 라는 궁금증이 발동하여 뉴스를 몇 번 톺아보았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서민들은 경험 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럴 때 마다 평생 7남매를 키우시느라 한 눈팔 여가 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가신 아버님을 떠올린다. 아니 웬만한 시골동네 집값을 전부를 합해도 100억이 될까? 돈으로 만 따진다면 우리들은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인생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던져 본다.

그래서 집한칸 없이 사는 사람이 감히 용기를 내어 100억짜리 집에 대해서 운운해 본다. 오래전 H그룹 회장님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 넘어 고향에 간 일로 한바탕 요란이 있었다. 저녁뉴스를 보시든 큰스님께서 “저기 저 재벌이 돈이 더 많을까?

아니면 내가 더 많을까?”물으셨다. “당연히 재벌이 더 많죠”하고 대답했다. 웃으시며 오늘 공부 헛했구나 하셨다. 순간 “개가 뼈다귀를 핥으면 핥을수록 고기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듯이 끝없는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온 우주를 다 가져도 부족하다”는 오전강의가 생각났다.

큰스님께서는 돈으로 따지면 재벌을 당 할 수 없다. 하지만 저렇게 늙어서 거동이 불편하고 은퇴할 나이가 지나도록 지족(知足)을 모르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다며 말씀을 맺으셨다.

집은 삶의 공간이다. 그런데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본래의 목적보다는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면서 전 국민이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집 때문에 살아가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이렇다 보니 집에서 이루어져야 일 즉, 삶의 많은 부분이 사라져 버렸다.

초가삼간(三間)은 작지만 생활공간을 충족했다는 말이다. 세 칸[三間]은 가족의 기본구성원인 부부와 아들, 딸이 구분지어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말한다. 우리민족은 일찍이 온돌이라는 인류최고의 주거공간을 계발함으로서 여느 민족과는 전혀 다른 생활방식을 꾸려왔고 초가삼간에서도 불편 없이 살 수 있었다.

너무나 당연해서 별관심이 없었던 온돌은 열과 연기를 분리하고, 그 열로 조리를 하며, 바닥을 덥힘으로서 공기의 순환이 일어나 방 전체가 따뜻하다. 뿐만 아니라 난로에 비해 연료가 적게 들어가는 반면 열기는 오래 지속되는 인류최고의 주거방식이다. 난로에만 의존했던 민족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침대에서 개를 안고 추위를 견딜 만큼 겨울을 나는 것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일이었다.

집값은 평당으로 매겨지니 크게 지어야 이익이 많이 남는다. 그래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주거공간이 크게 필요한 생활방식이 유리하다. 기업들은 생활공간이 넓을 수밖에 없는 서구의 주거방식을 본보기로 하여 우리의 전통은 무언가 부족하며 비과학적이라고 선전하였다. 그 결과 ‘민중은 현실에 대한 반성 없이 같은 일을 맹목적으로 반복하고 따라함으로 어리석다’는 말처럼 우리들은 어느 듯 집의 노예가 되었다.

고급문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침대, 소파, 식탁 등은 온돌에서는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이다. 의자와 침대는 앉는 자리와 잠자리에 발을 단 것에 불과하다. 온돌이 없으면 바닥이 차기 때문에 맨바닥에는 앉고 누울 수 없다. 그래서 식구 수만큼의 침대가 필요하고 거실이라는 의자가 놓인 공간과 식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침실, 거실, 주방(식탁) 등에 고정적인 설치물이 있어서 공간의 효율성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온돌은 이부자리를 펴면 침실이요, 밥상이 들어오면 식당이며, 큰 방은 하루 종일 식구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거실이 된다. 때에 따라 문을 열면 마루를 지나 마당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니 마을사람이 전부 모이는 행사정도는 거뜬히 치를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
같은 공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르게 변신하는 주거환경이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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