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분 작가의 방 - 첫 번째 / 백암목장 김용석 대표



美 에머슨의 ‘진정한 성공’ 10배 실천

축산 규모와 기술에서 울진 최고 전문가

 

우리는 오로지 성공을 위해 머리에 흰 띠 두르고, 앞으로 앞으로 적진을 향해 진격하듯 내달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 때 ‘성공’ 이란 연봉이나 재산이 얼마냐는 잣대로 성공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성공’ 을 그런 금전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

미국의 시인이며 사상가인 에머슨은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가?> 라는 시에서 이 물음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현재 살아 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라고 했다.

오늘 울진에도 혹시 이렇듯 “진정한 성공” 을 이룬 사람이 있을까 해서, 평해읍 학곡리를 찾았다. 늦가을 너른 들판에는 노랗게 익은 벼와 들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김용석 (63세) 백암농장 대표도 벼와 들꽃과 소와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울진신문사가 마련한 <특별 초대석>에 첫 번째로 모신 분이 김용석 대표다. 그는 평해읍 학곡리에서 소 500두를 키우고 있다. 김대표는 1955년 평해읍 학곡리에서 아버지 김이두씨, 어머니 김국지씨 사이에 8남매 중 6번째로 태어났다.

부친 김이두씨는 평해 향교의 전교(典校)를 지냈으며, 울진군 교육위원을 지낼 정도로 울진교육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정미소와 제재소도 운영했던 분이다.
김 대표는 평해초`중 졸업한 후 서울 동국대부속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 농축산대학 원예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도에 고향 평해로 돌아왔고, 부인 박미옥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사)한국농업경영인 선정 (1987년) *(사)한국농업경영인 울진군연합회 회장 (1988년) *전국한우협회 울진군지부장 (1990~1992년) *선도농업경영체 선정 (1996년 농림부) *한국농수산대학 현장교수 (1997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수상 *경북대구한우협동조합 이,감사 (2001~2014년) *한우육종농가 (2005년) *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상 수상 (2015년) 했다.

                                                               인터뷰와 기사 작성- 배동분 작가


1. 원예학과를 졸업했는데, 굳이 축산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대학졸업 후 취직을 안하고, 바로 친구 농장에서 젖소와 돼지 키우는 일을 했다. ‘그저 한번 같이 키워보자’ 는 마음으로 쉽게 대들었다.
3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산에 대한 공부를 하며 진로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라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축산을 선택했다.
그리고 의대 가기를 원하셨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축산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전공한 원예(화훼)는 평해에서는 대도시에서 멀어 판로개척의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에 과감히 포기했다.“


2. 백암목장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시행착오도 많았을 텐데...

“처음엔 어머님이 키우시던 돼지 3마리와 젖소송아지 13마리로 시작했다. 그러다 30평짜리 돈사도 지으며 조금씩 조금씩 불려나갔다. 피나는 노력을 해 특별한 시행착오는 없었다.
하나라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밤낮으로 쫓아다녔고, 돌아와서는 실천하면서 연구하느라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다.“

김대표는 소만 키운 게 아니었다. 60마지기 땅에 유기농으로 농사도 지었다. ‘한국유기자연농업연구회’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면서 유기농 공부와 실천 또한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유기농과 축산을 접목하기 위함이었다.
“일례로 톱밥유기 발효사료를 직접 만들어 소에게 먹였는데, 그렇게 하면 파리, 구더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행착오가 별로 없었다고 한 것이다.”


3. 백암목장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어려움도 있었을텐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7일이 안된 송아지를 사와서 우사도 없이 키우는데, 송아지가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새벽에도 몇 번씩 나가 보곤 했다. ‘이런 식으로 키우면 소 다 얼어 죽인다’ 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울진에서 처음으로 ‘개방식 우사관리’ 방식으로 송아지를 강하게 키웠다.
젖소 13마리를 지금의 우사 자리에 8헥타르의 초지를 조성해서 방목하고, 하우스 우사를 지어 키우기 시작했다.

또 젖을 짜면 평해까지 수집차가 오지 않기 때문에 매번 영해까지 싣고 나가야 했다. 그 어려움은 몇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때 아내의 도움이 컸다. 매번 젖을 짜서 싣고 나가는 일 등의 어려움이 반복되어도 묵묵히 함께 일을 도와주고 응원해 준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가 착유우 60두, 육성우 80두였다. 젖소도 우량소로 만들기 위해 육종개량 하는 데, 과감히 투자했기 때문에 우수목장으로 인정받아 매일유업에 1등급 우유를 납품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목장이 매일유업의 견학장이 되었다.“


4. 젖소에서 한우로 전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1994년에 최초의 위기가 있었다. 1등급 우유가 나오던 소에서 갑자기 2등급 우유가 나왔다. 그것은 사료의 문제였다. 사료회사를 바꾸어도 보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한계가 있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유파동까지 와, 젓소를 다 정리하고 한우 사육으로 전환했다.“
“젖소를 접고 1995년에 한우(임신우) 76두로 시작했다. “축산업의 최고 단계는 낙농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까다롭고 힘들다. 그러나 낙농을 잘 해냈기 때문에 한우를 키우는 것은 오히려 쉬웠다.” 상처 나고 굳은 살이 박힌 김 대표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5. 한우 사육으로 로 전환 후 기억할만한 일이라면,,,

젖소를 키울 때 일본까지 가서 배웠는데, 그 당시 일본축산이 우리나라보다 100년 앞선 상태였으며, 6개월 된 송아지가 30%나 더 비싼 값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우수젖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는 데, 그 젖소를 키우던 노하우를 이용하여 우수한 한우 개량에 온 힘을 다 했다. 그 결과 2005년에 ‘한우육종농가’로 선정되었다.

이어서 2014년에는 후보씨수소 선정, 2017년 보증씨수소 선정, 2018년 4월과 10월 두 차례 후보씨수소로 정부지정 육종우에 선정되었다. “후보씨수소는 한 마리당 1천만원을 받고, 다시 보증씨수소로 선발되면 마리당 5천만원을 더 받는다. 그래서 그 절차와 선정이 매우 까다롭지만, 위와 같이 선정되어 총 8천만원을 받았다.


6. 그런데 김대표는 이 값비싼 우량소를 매년 기부한다는 것은 감동이다.
어떤 연유인가?

“매년 ‘울진농업인한마음대회’가 열려 왔는데, 예전에는 행사 중반도 되기 전에 참자가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등 활성화가 안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농업인의 사기를 높이고, 화합을 도모하는 한마당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부인 박 여사의 아이디어로 송아지 한 마리(가격이 유동적이지만 대략 4백만 원 정도)를 행사 마지막 경품으로 기증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농업인들도 자신의 농산물을 경품으로 조금씩 내놓아 더욱 활성화됐다.“


7. 년간 10여 마리의 송아지를 배내사업으로 기부한다면서요

“해마다 송아지 한 마리를 기부하는 중에 어느 축산하는 분이 찾아와서 소를 적게 먹이는 농가에 송아지를 주면 안되겠느냐고 했다. 그 말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결국 ‘농업인한마음대회’에 기부하는 것과 별도로 배내사업으로 1년마다 읍면에 송아지 한 마리씩 주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10년 동안 한 마리씩 줄 것을 한 해에 한꺼번에 10마리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2017년에 10마리를 기부했고, 2018년 올해 11마리를 기부하여 총 21마리를 이웃
축산농가에 나누어 주었다. 울진군 농축산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이 때도 아내와 상의를 했고 흔쾌히 허락해주어 기쁜 마음으로 기부할 수 있었다.“


8. 젊은 농축산인에게 혹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면

“첫째는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은 기본이다. 바닥부터 노력하여 일어선 사람은 어떤 험난한 파도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둘째,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긍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과감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셋째,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직시해야 하고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넷째, ‘투자에 있어서는 과감하라’ 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9. 끝으로 앞으로의 삶이나, 사업계획에 대해

“보다 많은 보증종모우 선정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선도농가로서 다른 축산농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함께 사는 일에 고민할 것이다. 내 고향 울진에 더욱 봉사하고, 나누는 일이 녹슬지 않도록 더욱더 노력할 생각이다.

끝으로 지금의 백암목장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아내의 도움이 컸고, 어떤 기부에도 흔쾌히 허락해 준 아내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 이 기회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또 앞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며, 이야기를 마쳤다.

축산농가의 랜드마크가 된 백암목장 김용석 대표는 울진의 농축산인들에게 성공과 나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인터뷰 전반에 소개한 에머슨의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가>에 부합하는 분이었고,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의 끈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유지하는 길을 가는 성공인이었다.

인터뷰 내내 “김용석 대표는 울진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기 위해 노력했으며, 자신이 현재 기부와 봉사를 실천함으로써 울진 농축산인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 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