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시인, 논설위원)

 

현대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김수영이라는 이름을 모른다면 아마 간첩(?)일지 모른다. 그만큼 시인 김수영이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말함이렷다!

김수영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강제 징집되어 전쟁을 체험하고, 부산 거제리(경남 거제도가 아닌)의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바 있다.

그 뒤 4·19혁명, 5·16 군사 정변에 이르기까지 이념대립 등으로 소용돌이치던 역사의 한복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1968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만주에서 처음 연극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김수영이 해방 후 귀국하여 사람들 앞에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묘정의 노래」 라는 시였다. 그로부터 23년간 김수영은 한국의 문학판을 뒤흔든 문제(?) 시인이었다.

필자가 그의 시를 알게 된 것은 80년대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김소월, 박목월, 박두진, 유치환, 김영랑 등의 알록달록 탐미적인 시와 달리, 김수영은 투박하기 짝이 없는 산문 같은 문장 형태를 구사하고 있었다. 시의 주제 의식이나 상징이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정치 현실을 고발하고, 언어 또한 알록달록한 언어가 아니라 울퉁불퉁했다. 충격이었다.

김수영 연구자들은 4·19 혁명을 기점으로 그의 시가 변화했다고 보고 있다. 시작(詩作) 초기에는 모더니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으나, 차츰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정신에 기초한 시를 썼다. 이후 죽을 때까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고, 자유와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와 시론, 시평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가 『풀』이다. 시에 나오는 ‘풀’과 ‘바람’의 관계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다. 혹자는 그가 모더니즘이니 참여 시인이라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풀은 그냥 자연스러운 식물인 바, 『풀』은 풀과 바람을 노래한 절창이다. 어쨌든 그 시로 김수영은 ‘풀의 시인’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올해는 김수영 사망 50주기다. 이달 초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김수영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50년 후의 시인』이라는 주제로, 그의 대표작인 『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비평, 광화문 촛불의 뿌리와 김수영, 김수영 문학의 불온성, 김수영의 여성관 등 『김수영의 시와 삶의 이념』에 대한 총체적이고 묵직한 주제들이 발표되었다.

김수영에게 문학은 “단순히 문자 행위만이 아니라 언어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문화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일체의 이데올로기적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일체의 행위를 포괄하는 것”(고봉준 경희대 교수)이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삶과 예술(문학)은 유리된 것이 아닌 삶의 일체이자, 실천적 행위 자체였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아닌 문학과 삶의 일치이다. 그에게 『시』는 『자유』를 위한 싸움이었고, 『미학』이 아니라 『삶』의 문제였다.

김수영 문학의 핵심은 ‘자유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식민지, 해방, 한국전쟁 체험, 4,19혁명의 좌절, 부패한 자유당 정권과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질곡과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부재한 현실에 맞서 문학으로 싸웠다.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온갖 금기와 허위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시인이었다.

그가 직설적으로 『사상과 언론의 자유』 문제를 제기한 시가 『김일성 만세』라는 그의 유작이다. 이 시는 김수영 생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김일성 만세’라는 불온한 다섯 글자 때문에 당시 잡지사나 언론사들은 게재를 거부했다. 이성과 합리가 무덤으로 갔던 오랜 세월을 거쳐 이 시는 문학평론가 김명인을 통해 2008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실리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나는 잠이 올 수밖에/(중략)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관리가 우겨대니/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일성 만세>, 김수영

때로 문학은 시대와 불화한다. 어느 시대건 앞서가는 시인은 당대의 전위에서 현실을 비판한다. 그들은 당대에 부재한 자유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노래한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실을 장악한 기득권 세력의 눈에 그들은 아주 위험하고 불온한 세력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 불온한 세력이 억압된 정치적 현실을 개척하고 자유의 지평을 넓히면서 진보해왔다. 김수영이 그렇다. 불온한 다섯 글자, 김일성 만세! 그가 살았더라면, 아직도 헌법의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온전하게 보장되지 않았다고, ‘시인이여, 기침하자’고 선동할 것만 같다. 김수영, 그는 한국 『민족문학』의 선구자였다. <학술대회를 참관하고서, 201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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