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스님

 

앞선 호에서 온돌은 한옥만이 가지는 특성이므로 ‘바닥난방을 하는 아파트도 한옥이다’ 라고 말할 만큼 인류 최고의 난방법이라고 했다.

집의 구조는 인간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행동방식을 결정한다. 현재 대부분의 가정이 탁자생활을 선호하면서 집의 공간효율은 형편없이 떨어졌고, 자녀교육은 물론 세대 간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급격한 서구화의 부작용으로 우리 나름의 전통적 삶을 외면하고 자존감 없이 남의 것을 무조건 받아들인 결과이다. 전통적 삶에 대한 무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돌이켜볼 여유마저 앗아가 버렸다.

앞서 언급했듯이 온돌생활에서 방은 필요에 따라 변신을 거듭한다. 이불을 펴면 침실이 되고, 밥상이 들어오면 식당이 되며, 바느질하는 어머니 옆에서는 자녀가 책상을 펴고,…,…. 각자의 작업실로 변한다. 짬을 내어 차와 간식이 들어오면 일순 거실이 된다.

이처럼 온돌은 침대, 식탁, 소파 등으로 공간기능이 미리 정해진 탁자주거에 비해 효율이 높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특정개념에 집착하지 않는 여유와 융통성과 창의력 등을 자연스럽게 길러낸다.

침대는 365일 펼쳐져 있는 잠자리로서 아무 때나 몸을 눕힐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이부자리를 펴고 개면서 절제된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는 온돌생활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일과를 마치고 이부자리를 펴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고, 아침에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으로 새로운 하루를 이어간다.

여기에 바닥으로부터 스며드는 온기는 어머니의 뱃속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아늑한 잠자리를 만들어 따뜻한 심성을 키운다. 침대나 일본식 다다미방처럼 자기 체온을 이불에 가두어서 잠을 자야하는 방식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자식은 부모님의 이부자리를 펴면서 바닥의 온기를 살피고, 아침에 잠자리를 정리하며 문안드리는 것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으니 굳이 효도를 말하지 않아도 도리를 배운다. 뿐만 아니라 한 이불을 덮고 자라는 형제는 티격태격 하면서 우애가 깊어가고, 집안행사에 친척들이 모일 때면 한 방에서 살을 붙이고 잠을 잔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친척을 살붙이라 한다.

이처럼 온돌에서는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만큼, 즉 방바닥 넓이와 잠자리가 비례한다. 하지만 침대는 침대 개수만큼 잠자리가 미리 정해져있다. 그래서 탁자문화에서는 다른 사람을 초대할 때 침대와 의자개수, 식탁크기 등을 미리 고려해야 하지만 우리는 대게 음식 장만에서 끝이 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탁자문화에서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초대는 거의 없다.

한국인이 가지는 ‘서너 개’ ‘대여섯 개’ 라고 하는 일상 셈법의 여유와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은 온돌이 만들어낸 정서이다. 침대문화권에서는 같은 성(性)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손잡고 길을 걸으면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여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우리는 몸을 많이 부대낄수록 친밀감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탁자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종일 펼쳐져 있는 혼자만의 잠자리인 침대에 아무 때나 몸을 눕히는 습관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미리 정해져 있는 식탁과 의자가 있으니 자리를 양보하거나 좁은 공간을 나누어 앉는 배려심이 사라졌다.

그래서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혔던, 하루의 시작과 마침이 분명하고, 아침저녁 어른들의 문안을 살피는 등등의 일상에서 터득하는 인성교육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처럼 온돌문화의 (조)부모세대와 탁자문화의 자녀세대는 정서와 행동방식에서 완전히 달라졌고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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