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분 작가의 방 세 번째
‘법무법인 아태’ 김진세 고문변호사



자녀교육 경쟁 아닌 협력을 가르쳤으면...

칼자루 쥔 검사, 서민과 약자 삶도 살펴야

 

‘법’ 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대부분은 디케를 떠올릴 것이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법의 여신 디케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디케의 두 눈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다.

눈을 가린 이유는 무엇일까? 법의 판단을 할 때 그 어떤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감정 등에도 절대 눈을 돌리지 말고 공정한 법의 판단을 하겠다는 상징은 아닐까? 이처럼 법의 여신 디케의 모습만으로도 법은 어떤 잣대여야 하는지 감잡을 수 있다.

이러한 법은 그림자처럼 우리의 일상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법‘하고 발음하면 철벽처럼 딱딱하고, 인정사정 없고, 차갑고, 접근하기 어려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은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법조계의 중요 자리를 두루 거친 김진세 변호사를 근남면 수곡1리 자택에서 만났다.

*약력 : 울진초등학교, 울진중학교 졸업, 춘천고 및 서울대 법대 졸업, 하버드 로스쿨 법학석사, 제7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서울지검. 부산지검 검사, 울산지청장, 춘천지검장, 부산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황조근정훈장 수상

 

“친구들과 ‘장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을 만들어 초`중학교 동기 및 후배들과 주로 장날에 자주 만난다. 칼국수와 막걸리 한 잔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소중한 요즘이다.”


1. 요즘 근황에 대해서

법무법인 ‘아태’의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명지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젊은이들과 특강을 통해 소통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근남면 수곡1리에 아담한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에 나무도 심고, 꽃도 가꾸는 일상이 참으로 소중하다. 내가 심은 나무에 꽃망울이 맺히고 열매가 열리는 모습에서 자연의 섭리를 알아가는 중이다.
또한 친구들과 ‘장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초. 중학교 동기 및 후배들과 주로 장날에 자주 만난다. 칼국수와 막걸리 한 잔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소중한 요즘이다.


2. 울진 출생이 아닌 것으로 아는 데, 울진에 터를 잡은 이유는?

1942년 강원도 금화에서 태어났다. 춘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아버님이 울진경찰서장으로 발령받아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이곳 울진에서 학교를 다녔다. 선대가 하당과 상당에 사셨었고, 부구리에 부모님의 산소를 모셨다.
울진초등학교와 울진중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춘천으로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진학차 서울로 갔기 때문에 그때부터 서울에 터를 잡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꼭 울진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택지조성하는 동안 울진에서 지내다 보니 친구들도 정답게 대해주고, 자연환경도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집을 처분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보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울진에서 보내고 있다.


3. 법을 전공한 이유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뜻이 있었다기 보다 그 당시만 해도 서울 법대가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법대에 갔고, 자연스럽게 고시공부를 하게 되었다. 5명을 뽑는 사시 7회에 수석으로 합격을 하다 보니, 쭉 그 길을 가게 되었고 최선을 다했다.


4. 왜, 검사를 지원했나요?

판사는 업무가 수동적이지만 그에 비해 검사는 능동적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검사의 일은 요리로 비교하면 일일이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전 과정을 다 관여해야 하는데, 그 점이 매력으로 느껴져서 검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내가 오랜 세월을 법조인으로 살았지만 어려서부터 사생대회, 글짓기대회에 나갈 정도로 그 방면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문화 예술 쪽 인사들과도 교류가 많아서 오랜 검사생활 동안에도 팍팍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던지 취미나 관심이 예술과 인문학과 함께 한다면, 따뜻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본다.


5. 검사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두 가지만 말하겠다. 한 가지는 서울지검 평검사 시절의 일인데, 그때는 소매치기, 조직폭력배들이 들끓던 시절이었다. 그때 치기배, 조직폭력배 전담수사팀을 만들어 전국의 치기배와 조직폭력배 75개파를 일망 타진했다.

그 당시 이 사건은 연일 큰 뉴스였고, 수사상황을 검찰총장이 대통령에게 대면보고까지 할 정도였다. 이 일로 나는 평검사로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때 구속된 사람 중에 김성준이라는 권투선수가 있었다. 그가 수감생활을 끝내고 권투를 다시 시작하려니 물의를 빚었다는 이유로 라이센스가 박탈되어 권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은 다시 재생의 길을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권투위원회에 전화해서 담당검사로서 이 선수의 라이센스 박탈은 재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적극 설명했다.

결국 이 선수는 다시 프로권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월급을 5만 원쯤 받을 때인데 월급 중 3만원을 쥐어주며, 고기 사먹고 힘내서 열심히 운동하라고 격려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선배검사 등 20명이 ‘김성준 선수 후원회’를 만들고 내가 후원회장을 하면서 끝까지 도왔다. 그 결과 그는 동양챔피언이 되고, 세계권투평의회(WBC)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챔

}피언이 되어 3차 방어까지 이루어냈는데, 이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 일은 내가 1993년 춘천검사장을 할 때의 일이다. 검사 회의 때마다, “시골은 사건이 많지 않아 작은 일도 크게 보일 수 있으니 이 점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했다. 검찰권의 과잉행사, 과잉 구속, 과잉 구형에 확실한 제동을 걸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당시 10여 호가 사는 문배마을에는 자동차 길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관광지인데도 모든 생필품을 등에 이고 지고 끌고 산길을 걸어올라 다니며 날라야 했다. 한번은 퇴근하려는데 보고가 들어 왔다.

문배마을 이장과 총무를 산림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법원에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내용이기에 마을 이장과 총무를 구속하려는지 그 이유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에 자동차 길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산판길이라도 이용하기 위해 트럭이 들어가도록 주위의 나무를 베어냈는데, 벌채량이 많아 군 산림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난 청구서류를 법원 접수 전에 당장 찾아오도록 지시하고 즉석 간부회의를 열었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안 들어가는 마을이 없는데, 이곳은 관광지로서 그 많은 생필품을 일일이 30분 이상 비탈길을 손으로 옮겨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데도, 공무원들이 예산을 확보해서 길을 닦아줄 생각은 못하고, 주민들이 생존권 차원의 자구책으로 오래된 산판길을 손보느라 나무 벤 것을 가지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질책을 했다.

결국 이 건은 종결처리 됐고,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주민들 숙원도 잘 해결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칼자루를 쥔 사람들에게 꼭 말한다. “크나 작으나 칼자루를 쥔 사람에게는 사람과 사회를 보는 눈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이다.


6. 최근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등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는 데 이 점을 어떻게 보시는지?

한국은 폭력사건 세계 1위의 국가다. 또 사기, 무고, 위증 등의 거짓말 범죄는 우리나라가 예컨대 일본의 60배인데, 인구비례를 감안한다면 일본의 160배에 이른다. 전체 폭력사건 수는 2000년 이후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지만, 질문과 같은 묻지마 범죄, 우발적 폭행은 지난 10년 동안 10배로 증가했다.(대검찰청 통계)

이것은 개인과 개인 간의 인간관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개인 간의 불신이 증폭되기 때문에 사기, 무고, 위증이 판을 치는 것이다. 살인사건, 폭행사건도 이유 없는 우발적 충동에 의한 사건이 대폭 증가하고 있고, 발생 장소는 길거리가 제일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기분 나쁜 눈빛으로 쏘아본다는 이유로, 어깨를 부딪혔다는 이유로 폭행과 심지어 살인까지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났을 때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선진국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가벼운 목례나 인사를 하도록 어려서부터 철저히 가르친다. 타인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는 심성과 매너를 체질화되도록 길러주는 것이 그들의 1차적 기본교육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사람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호기심을 불어넣어주어야 할 어린아이들에게, “남에게 지고 들어오면 안 돼!” “나가서 맞고 들어오면 안 돼!” 하고 경쟁심과 투쟁심만 부추기는 무서운 가정교육을 하고 있다. 학교교육 또한 이에 영합하는 무한경쟁 교육으로 인간성 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부모들의 교육열은 초일류인데 자녀교육의 방향이 한참을 어긋나 있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정에서부터의 기본교육 부재가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7. <미완성의 토론>이라는 책을 냈는데 짧게 설명한다면?

이전에 낸 책 <한국사회 무엇이 문제인가>를 2003년에 보완, 증보한 것인데,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우리나라가 폭력사건 세계 1위의 국가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 동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쓸 때보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서 우리사회는 초갈등사회로 치닫고 있다. 지역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정치. 이념갈등 등... 그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 모든 집단 간 갈등의 바닥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원초적 갈등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모르는 사람과 잘 지낼 줄 모르기 때문에 소수의 아는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다니는 학연, 지연, 혈연 위주의 소집단주의,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미완성의 토론>은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설명해가는 책으로 많은 분들이 큰 호응을 해주어서 보람을 느낀다.


8. 평소에 즐기는 취미가 있다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책 안에 몰랐던 세계가 있었고, 내가 어디에 있든 세계로 가는 해법도 있었다. 독서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부모도 아이들도 그 길로 접근하고 활용하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아이들을 보면 그래서 안타깝다. 어려서부터 평생습관이 되어버린 독서는 지금도 나의 좋은 길잡이가 되고, 위안이 되어 주고 있다.

그림, 글씨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열심히 보러 다니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분재, 수석, 도예, 목공 등 연결되는 관심분야가 많다. 이런 취미 덕분에 강과 산 옆에 살면서도 심심하거나 외로울 시간이 없다.


9.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첫째, 울진에 집을 짓고 살겠다고 했을 때, 다짐한 게 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조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도움을 주고, 교류하며, 조언을 줄 수 있지만 공적인 행사에는 되도록 참석하지 말자는 거였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둘째, 검사시절부터 몸을 혹사하는 생활이었다. 거기에 술과 담배까지 했으니 몸이 어찌 되었겠는가. 그런데 이 공기 좋고 물 좋은 울진에서 3년 넘게 지내면서 운동하고 친환경 농수산물을 먹으며 살다 보니 많이 건강해졌다.

개인적으로 울진에 터전을 마련한 것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관심과 생각을 살려가면서 지역 사람들과 따뜻하게 교감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글`사진/ 배동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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