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나는 요즘 서울에서 울진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서울에도 울진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모임이 많고 내가 좋아하는 술자리도 그만큼 많다. 10개 읍·면민회의 수시로 열리는 각종 행사에다 각각의 소속 산악회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모임을 합치면 주말마다 한두 군데는 틀림없이 자리가 생긴다.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웬만하면 불러주는 대로 쭐래쭐래 따라나서는데, 문제는 내 식성이 별나서 차려진 귀한 음식들을 앞에 두고도 젓가락만 깨작거리다 술만 먹고 돌아온다는 거다.

바다를 빼놓고 울진을 얘기할 수 없듯이 서울에도 울진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빠짐없이 해물이 등장한다. 모이는 장소도 대부분 고향 분들이 운영하는 횟집이거나 해물식당이니 당연하겠지만, 산악회를 따라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산꼭대기에 올라도 막회며 해물젓갈 접시가 펼쳐지는 것을 보면, 울진사람들의 해물 사랑은 누구도 못 말리지 싶다.

그런데 나는 해물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두고 모두가 신기한 듯이 바라봐도 어쩔 수 없다. 나뿐 아니라 형제들이 모두 비슷하다. 물론 양친(兩親)의 식성도 그랬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얻은 내 결론은 가까운 선대(先代) 할머니(祖母)들이 전부 내륙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내 고향도 후포면에서 대표적인 산골인 데다 시집을 온 분들의 친정이 모두 바다가 없는 내륙이었으니, 집안의 음식내력이 해산물과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고향마을의 일반적인 통혼(通婚)과도 다른 점이 있었다. 마을의 동무들 외가(外家)는 어쩌다가 해안가 마을에 있기도 했으나, 대부분 외가가 온정면이거나 마을과 인접한 병곡면 산골로 한정되어 있었다.

촌마을에 한 여성이 결혼을 하여 이주를 하면서 친정 동네와 시집 사이에 연줄혼이 집단으로 혼맥(婚脈)을 형성하기 때문에 외가들도 비슷비슷한 곳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선대 할머니들의 친정은 다른 지역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집을 온 분이 연일정씨였던 할머니로 친정이 영덕군 창수면이었고, 용궁전씨 증조모는 영양, 경주이씨 고조모는 봉화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호적으로 알 수 있다. 증조부 이후로 집안이 기울면서 한마을에 살던 친인척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연줄혼의 흔적도 사라졌을 테지만, 아무튼 할머니들의 친정은 깊숙한 내륙이었다.

옛날, 남자들이 객지를 떠돌다가 한밤에 고향집에 들를 때는 가장 먼저 장독대로 갔다. 장맛을 보고 노모(老母)가 아직 건강하게 계신지 어떤지를 짐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시어머니가 호되게 가르쳐도 며느리가 시어머니 장맛을 똑같이 재현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친정에서 길들여진 며느리의 입맛까지는 바꿀 수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한 집안의 음식 내력은 어머니들의 친정 식성과 시집의 입맛이 조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건진국수가 사시사철 일상식이고, 안동식 밥식해가 가을 겨울 밥상을 통차지했던 우리 집 음식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바다를 보면서 자랐어도 생선을 꺼린 이유 역시 내륙 깊숙한 곳에서 시집을 온 할머니들 입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지금 울진의 슬로건은 ‘숨쉬는 땅, 여유의 바다’다. 바다와 땅이 함께 호흡한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사실 울진은 해안 지역이라 할 수 있지만, 내륙으로 가면 울진 만큼 깊은 산골도 드물다. 당연히 음식문화도 바다와 산골이 혼재하고 그만큼 다양할 것이다. 그러한 울진의 특색을 좀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닷가와 산골의 경계를 두고 밥식해 맛이 천양지차로 다르다. 같은 울진이라도 바닷가 김치와 내륙 김장김치 맛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바다와 산골이 호흡하는 식당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서울의 울진식당들도 횟집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울진 돼지국밥, 울진 소고기 국밥집도 있어서 나 같은 내륙성 입맛들도 즐길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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