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농모 배동분의 세계여행기( 5)

 


세계 10대 여행지- 크로아티아 자다르

세계 두 번째, 여수가 자다르 벤치마킹

 

내 귀농 이유는 달랑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이들을 자연에서 책과 여행으로 키우겠다는 거였고, 나머지 하나는 앞으로의 삶은 남들이 굴려놓은 다람쥐 쳇바퀴에 어떨결에 굴러가는 삶이 아닌 삶의 자전거 페달을 내 의지대로 밟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 이유대로 연고도 없는 이 울진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고,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짐싸서 가고 나서야 내 삶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답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뜻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크로아티아 자다르(Zadar)에서 해 보았다. 여행은 그래서 쉼표이면서 느낌표고 물음표다.

이번 여행은 체코 프라하 In,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Out으로 체코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자다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자그레브를 배회하는 한 달간의 긴 일정이었다. 여행계획단계에서 딸에게 이번에 꼭 가야 한다고 못 박은 곳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크로아티아의 자다르였다. 나머지는 딸에게 일임할 정도로 이번에 소개하는 자다르는 가야할 두 가지 이유가 분명했다.

첫째는,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여행사이트인 론니 플래닛(Lonely Planet)이 선정한 “2019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10대 도시”로 크로아티아의 자다르를 뽑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다르를 울진관광에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벤치마킹하기 위한 이유가 분명했다.
 

이제는 자연의 멋진 모습 하나만으로 영리한 여행객의 주머니를 열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다르 조합’을 상세히 느끼고 돌아와 울진군에 아이디어를 제안해 보리라 생각했다.
자다르하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석양’과 ‘바다 오르간’이다. 유명 영화감독인 히치콕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 가슴팍에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낙인찍힌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석양을 보기 위해 각국의 여행객들이 몰려왔다. 어느 나라든 석양은 있겠지만 다른 나라의 석양은 모조품이고, 유독 이 석양만이 '진품명품' 이란 듯 몰려들었다. 이곳에 온다고 하여 그 대단한 석양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3일 머무는 동안 달랑 첫날만 석양을 보았고 뭉크의 <절규>와 같은 표정을 하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낮부터 석양을 보러 몰려든 각국의 사람들은 밤기온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장갑과 목도리,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몇 시간을 기다렸다. 날이 서서히 기울자 진한 석양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것만 보고 일어나 간 사람은 10분의 1도 못 본 격이었다.

석양은 한 번에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표정으로 먼 길 달려온 여행객의 마음을 적셔주었다. 최후에는 하늘에 있는 구름이란 구름을 죄다 물들였다. 그 광경은 마치 커다란 하얀 천에 붉은 색으로 천연염색을 한 다음 하늘에 걸어놓은 듯했다. 그 천이 흔들릴 때마다 여행객의 마음도 함께 출렁였다.

여기까지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일인데, 거기에 금상첨화로 ‘바다 오르간’이 있다. 이 바다 오르간은 크로아티아의 천재 설치예술가인 니콜라 바시츠가 2005년에 만든 작품이다. 설치하게 된 이유는 자다르의 옛 영광을 되찾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석양을 볼 수 있는 바닷가 바로 그곳에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 아래 직경이 다른 35개의 파이프를 박아놓아 파도가 칠 때마다 그 공기의 힘으로 오르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켜주겠다는 의지의 표현과도 같았다.

자연이 연주자이기 때문에 같은 소리를 내는 일은 없다. 파도의 세기와 공기와의 조합이 늘 다르므로... 그 바다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석양을 보는 콜라보레이션을 상상해 보라. 남들은 이곳을 당일 코스로 들리는 곳이다. 아니 패키지 여행자들은 15분만에 후딱 보고 사진만 찍고 가는 곳이다.

딸과 난 꼬박 3일을 그 추운 바다에서 얼굴에 기미끼도록 보냈다. 목도리와 털장갑을 끼고 내복을 두겹씩 껴입고 밥만 먹으면, 바다에 앉아 바다가 들려주는 오르간 연주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 옆에는 ‘태양의 인사’ 라는 크고 둥그런 설치물이 있는데, 그것은 낮에 태양열을 충전해 두었다가 어둔 밤에 현란한 빛을 발하여 그 위에서 여행객들이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한 것이다. 자연풍경만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바다 오르간’ 과 ‘태양의 인사’ 까지 가세했기에 이런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늦은 저녁, 자다르 숙소에서 울진의 멋진 바다와 바다오르간 등의 조합을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중에 김빠지는 뉴스 하나를 접했다. 이미 ‘여수에 바다 오르간이 생긴다’ 는 지난 2월 뉴스였다. 세계에서 자다르에 이어 두 번째로 여수에 바다 오르간이 내년 3월에 완공을 앞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 발 늦었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늦도록 쓴 커피만 축냈다.
자다르의 석양을 보며 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amor fati)에 대해 생각했다. 내 삶은 그런 삶인지. 그런 의문을 가질 때 바다 오르간은 마음 밑바닥에 후렴을 깔아 주었다.

이처럼 여행은 삶과 투명하게 마주 앉는 시간이다. 그래서 피투성이가 되고 상처투성이가 되는 시간... 아드리해는 시린 빛깔로 내 등을 토닥여 주었고 그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소금기 있는 바닷물을 발라주었다. 내일은 스플리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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