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논설위원)


 

3월 말, 어느 날 오후, 하늘은 미세먼지로 우울한 환자처럼 잿빛이다.
승용차로 매화면 몽천교를 건너는데 오랜만에 알고 지내는 분들이 보여 차를 세웠다. 반가운 마음에 뭘 하시는가 물었더니 투쟁 현수막과 깃발이 바람에 찢겨져 정비하고 있단다. 깃발과 현수막에는『석회광산 폐광하라!』 『웅장한 남수산, 훼손 막아 보호하자!』 『주민갈등 배후세력 동민자격 박탈하자!』 『마을의 배반자들은 양심적으로 떠나거라! 안면스트레스다!』 등의 구호가 쓰여 있었다. 단순히 구호만 보면 순박한 농촌 마을이 왜 이렇게 되었냐며 씁쓸해 하겠지만 그 속사정을 알게 되면 수긍하기 마련이다.

『아직 싸움이 안 끝났나요?』 그 분들 왈, 『아직도 진행 중』이란다. 필자가 말한 싸움이란 2016년경부터 시작된 이곳 주민과 석회채굴광산업자와의 싸움이다. 이 싸움의 발단은 최근 30여 년간 석회광산 채굴로 남수산 일대가 갈라지고 무너지는 조짐을 보여 주민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는 이른바 대형 싱크홀 사태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석회광산의 과도한 채굴로 남수산 일대의 지반이 더욱 약해져 땅속은 텅 비어 그야말로 개미집같이 되었다는 것.

재작년에는 대형 씽크홀이 발생하면서 동시에 지진과 같은 현상인 떨림과 천둥소리가 울진읍에까지 감지되었다고 한다. 이에 심각한 사태를 느낀 주민들은 『울진석회광산반대범대책원회』(공동위원장 김영호,최부열,전병철)를 결성하여 진상파악과 함께 당국과 광산업자측에게는 재발방지와 안전진단을 요구했다.

그런데 업자측의 진단결과는 『광산 때문이 아닌 지질현상에 의한 함몰이며, 향후 산사태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안전진단 결과가 광산업체의 입맛에 맞는 『셀프안전진단』이라고 주장하며 『안전진단무효』를 선언, 당국에 재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남수산 함몰의 원인이 광산이냐, 지질현상이냐』는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싱크홀 원인을 단순한 지질현상으로 돌리는 것은 황당하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것이 지질 현상이라면, 남수산 인근의 자연석회동굴인 성류굴은 수억 년을 두고도 지금껏 아무 이상이 없다. 그래서 남수산이 갈라지고 무너짐은 분명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에 의한 자연훼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두고, 『남수산을 그대 무너뜨려 주저앉히자』 고 주장하는 일부 주민들도 있는 모양이다. 『마을의 배반자들은 양심적으로 떠나거라! 안면스트레스다!』등과 같이 마을 주요 길목에 펄럭이는 현수막 구호에도 나타나듯이 이러한 싸움에는 일시 그릇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잘못된 발상이다. 이에 전병철 공동위원장은 『남수산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안전진단이 광산업자의 입맛에 맞게만 거짓보고서로 나왔다. 석회광산 영구폐광과 함께 정부는 남수산 사태 전반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고, 주민안전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주민들의 고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무너져 내리는 남수산의 대책 마련이 아주 시급함을 느낄 수 있다.

남수산(437미터)! 남기(嵐氣: 산속에 생기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의 남(嵐)자에 산굴(산속에 있는 동굴) 수(峀)라는 한자이름인데 그 뜻은 『산속의 동굴에서 아지랑이 같은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렸다는 것』 그만큼 아름답고 정기가 흐른다는 산이라는 뜻일 게다. 어디 그뿐인가. 산줄기로는 낙동금장지맥인 끝인 울진의 명산으로 그 일대는 역사와 전통문화가 서린 유서 깊은 곳이며, 천혜의 비경인 왕피천과 매화천이 양쪽에서 동해로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예부터 고초령과 굴구지 목재를 넘고, 왕피천을 건너, 내륙으로 들어가던 보부상들과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산이기도 하다.

또한 금강송이 울창한 협곡에는 한국의 『노스트라무스』라 하는 조선중기의 예언가인 남사고의 학문 터가 있고, 3·1독립만세 당시 남수산 정상에 태극기가 높이 내걸렸던 일제에 항거한 상징의 산이다. 그 앞쪽 들판에는 기미만세공원이 있으며, 매화 2리와 금매리 일대는 풍수지리상 전형적 농촌명당인 배산임수형으로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 나 있다.

금매리에는 남수산에서 발원되는 한 모금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한국의 명수인 몽천(샘)과 조선시대 이곳 선비였던 윤시형 선생 등이 임금의 부덕함과 정치의 잘못됨을 지적한 상소문을 보내니, 이에 임금이 답한 삼조어비각등이 있다.
 

인근에는 최근에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관광명소인 천연기념물 성류굴이 있다. 따라서 남수산을 지키는 것은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과 울진의 얼을 지키는 것이다. 『세월은 흘러도 산천은 안다』는 노래 가사처럼 이제 남수산 일대에도 봄이 오고 있다. 둘레의 산천초목은 연초록으로 물들고, 집집마다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활짝 피어나고, 금강송은 푸르기만 하다.

울진동해안의 7번 국도가 지나고 매화꽃이 첫봄을 알리는 행정지명도 향긋한 매화면 소재지와 망망대해 동해를 굽어보고 있는 남수산!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는 말이 있다. 그 이름답게 주민들의 투쟁과 요구가 관철되어, 남수산을 영원히 온전하게 보전하면서 주민 간 갈등도 사라지고, 부디 예전과 같은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하여 남수산이여! 우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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