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분 작가의 세계여행기(6편)



나치의 60만명 유대인 학살 현장

희생자들의 것, 청동 모형 제작`설치

 

체코 프라하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데에는 버스로 6시간 반이 걸린다. 야간버스 안에는 각국에서 몰려온 여행객들로 발 딪을 틈이 없었다. 어느 여자 여행자는 버스예약이 잘못되어 있었는지 통하지도 않는 말로 한참 설명하다가 결국 그 야간버스를 타지 못하고 내렸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그는 어디로 갔을까? 남의 일 같지 않아 한동안 그가 사라지는 곳을 응시하며 옹알이 했다. ‘그는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우고 있구나. 다만 가려린 여행객의 밤이 고단하지 않기를...’ 이번 여행에서 부다페스트를 오려고 기를 썼던 이유는 ‘다뉴브강가의 신발들’과 ‘어부의 요새’ 그리고 ‘글루미 선데이’ 때문이었다.

나의 여행은 평소에 꿈꾸던 곳이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유럽배낭여행을 또 간다는 생각도 못했을 때, 우연히 JTBC ‘비긴 어게인2’라는 프로를 스치듯 보았다. TV에서 버스킹을 하는 장소가 부다페스트였기에 난 무엇에 홀린 듯이 ‘뽀로로를 영접하는 자세’ (무릎을 꿇고) 로 그 프로를 봤다. 그곳이 바로 ‘다뉴브강가의 신발들’이 있는 곳이었다.

음악과 슬픈 역사와 강가의 신발들은 또 하나의 삶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죽기 전에 꼭 가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당시에는 막연한 꿈이었지만,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귀신같이 꿈이 현실이 되었다.

‘부다페스트’하면 왠지 모를 우울함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안개처럼 내리깔리는 기분이 든다. 이제야 알았다. 역사와 도시의 풍경 그리고 영화와 노래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도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을 말이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중심으로 해서 부다지역과 페스트지역으로 나뉘는 데, 이 둘이 합쳐져서 부다페스트를 형성하고 있다. 도나우강과 다뉴브강은 둘다 같은 말이고, 독일식으로 읽느냐, 영어식으로 읽느냐의 차이다. 부다페스트에 와서 첫 번째로 달려간 곳이 ‘다뉴브강가의 신발들’ 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세체니 다리를 지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답다는 국회의사당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을 설명하려면 시간을 2차 세계대전 당시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때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신발들은 왜 이곳에 북박이처럼 놓여 있는 것일까? 나치 독일 하에서 죽은 유대인들 중 3분의 2 이상이 헝가리에서 죽었다.

다뉴브 강가에서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신발을 벗게 하고, 총으로 쏜 다음 강물에 밀어 넣었다. 당시 희생당한 유대인이 60만명이었고, 다뉴브강은 온통 벌건 핏물로 변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로 더 이상 유대인을 보내 처리할 수 없게 되자, 나치는 새로운 대안으로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 슬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2005년 조각가 귀울라 파우어가 유대인들이 죽기 전에 벗어놓은 신발들을 청동으로 제작하여 설치한 곳이다. 청동신발들은 방금 서둘러 벗어놓고 떠난 듯 생동감이 있어 등골이 시려왔다.

신발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인 남자, 여자 신발 사이로 어린 아이들의 신발들이 보였다. 죽음의 길로 가는데 얼마나 급히 신발을 벗었으면 끈도 풀리고, 짝이 흩어지고 신발끈도 맘대로 나부끼는 모습 그대로 놓여 있을까.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가장이고, 어머니고, 자식이었을 텐데...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은 그 신발을 벗을 때, 자신의 삶이 여기서 멈출 것을 알았을 때의 서러움, 공포감, 쏟아지는 그리움, 회한 등이 뒤범벅이 되어 같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지금도 강물 위를 그 서러움들이 맴도는 것 같았다.

이 청동 신발들 주위에는 꽃과 초, 동전 그리고 금방 누군가 써두고 간 듯한 편지도 나부끼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 신발 속에는 사탕과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이곳으로 모여드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침묵수행 중이었고, 오랜 시간 그곳을 뜨지 못하고 서성였다. 여행이란 어쩌면 삶과 죽음의 간극을 경험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순간,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중국 아이가 신발들을 발로 차며 소란을 떨고 다녔다. 난 경악했다. 더 가관인 것은 아이의 부모가 제지는커녕 자신들도 신바람나게 떠들기 바빴다. 아이에게 그만하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국가간 감정으로 번질까봐 참았다. 지금 생각해도 난 겁쟁이였고, 그게 부끄럽다. 최소한 남의 나라의 생인손처럼 아픈 역사의 현장을 갈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간단한 사전교육 정도는 시켜야 한다. 중국관광객으로 인해 상한 마음과 강가의 신발들을 본 감정이 뒤범벅이 되어 현기증이 났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은 언어는 달라도 하나의 감정으로 그 자리를 찾았을 것이고, 이 신발들은 풍경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여행자의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책으로 유명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했다. 신발들이 있는 강가의 묵직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햇살은 눈부시게 따가웠지만, 한동안 강가에 앉아 있었다. 그 햇살 사이로 작고 귀여운 노란 트램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아리 같은 노란 희망을 갖자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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