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울진 문화원장 / 본사 집필위원)

 


1. 삼국유사의 헌화가 

삼국유사 권 2 성덕왕(聖德王)편에 「수로부인」의 내용이 기록이 있다.
「水路夫人」 - 「聖徳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 溟 今 州行次海汀晝饍. 傍有石嶂如屛臨海, 髙千丈, 上有躑躅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謂左右曰, “折花献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辝不能. 傍有老翁牽牸牛而過者, 聞夫人言折其花, 亦作歌詞献之. 其翁不知何許人也.」

「수로부인」-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江陵) 태수(太守)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둘러 싸고 있고, 높이가 천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은 없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함께 가든 일행들은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입니다”라고 하면서 모두 사양하였다.

그때 한 나이 많은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와 노래를 부르며 바쳤다. 그 노인이 누구인 줄은 알 수 없었다」 그 뒤 이틀을 또 가다가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용(龍)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닷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수는 땅에 주저앉아 어찌할 줄 모르고 발을 구르고 있었는 데,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 “경내의 모든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태수는 곧 바로 마을 사람들을 불러 시키는 대로 했더니 용(龍)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왔다.

이때 부른 노래가 ‘해가(海歌)’이다. 「龜乎龜乎 出水路 掠人婦女 罪何極 汝掠悖逆 不出獻 入網捕掠 燔之喫」 「 해신아! 해신아! 수로를 내 놓아라 / 남의 부녀를 앗아간 죄 얼마나 큰 줄 아느냐? / 네 만약 거슬러 내 놓지 않으면 / 그물로 너를 잡아 구워 먹으리」

○필자는 지난 2001. 3월 모 지역신문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헌화가(獻花歌)’에 대하여 노래를 부른 지점이 울진의 연지리~ 북면 고포리 사이의 어떤 해안일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이 지역에다 ‘철쭉 동산’을 만들어 역사유적지를 겸한 관광지를 만들자는 의견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2008년 3.17일 자로 지역 모 신문에 헌화가를 부른 소재지는 울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글을 재차 기고했다. 그리고 당시 모 군의원과도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별로 없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군민들의 공감대를 구하고자 한다.

『삼국유사』라는 고문헌에 기술된 내용은 사실여부를 떠나 매우 중요한 역사적, 학문적 근거가 확보되는 일이다. 요즘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관광지를 만들고 유적지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도하는 시대인데 이같이 고문헌에 까지 기록되어 있다면 매우 훌륭한 소재라고 본다.

울진이 이같이 역사적인 근거가 있고 군민들의 제언이 있었음에도 심도있는 검토가 없었다는 것은 결국은 단체장의 마인드 문제였다고 보아진다. 우리군에서 이렇게 방관하고 있는 사이 다른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자기네 지역이라고 주장하면서 갖가지 관광 상품을 만들어 내었다.

10여년 전 이미 강릉시는 금진항에서 옥계리까지 6Km 해안도로를 만들면서, 명칭을 ‘헌화로(獻花路)’로 지정하였으며, 삼척시에서도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하여 삼척 해수욕장이 있는 와우산 끝자락에 ‘임해정(臨海亭)’을 재현하고, 이곳을 ‘해가사(海歌詞)’ 지역으로 정하는 한편, 무게 5톤짜리 「드레곤볼」을 만들어 연인들의 사랑과 소망을 기원하는 기념비를 만들었다.
또 몇 해 전에는 임원 항구의 해변 산꼭대기에 수로부인 상을 만들고, 직각 에리베이트를 설치해 관광 명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헌화가’의 배경이 울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지금도 늦은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라는 역사적인 자료를 근거로 하여 볼거리, 쉴거리를 만든다면 어느 관광지 보다 훌륭한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필자가 줄기차게 헌화가의 위치가 울진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2. 울진과의 관계

위 헌화가의 사건은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기 위해 경주에서 강릉으로 가는 도중 해변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일어난 이야기 이다.

위의 글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① 병풍같이 깎아지른 암벽 밑 해변가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했으니 시간적으로 한낮으로 볼 수 있고 ② 이틀 후 점심을 먹은 곳이 ‘임해정(臨海亭)’이라 했으니, ‘헌화가’를 부른 곳에서 북쪽으로 만 이틀 동안 거리에 ‘임해정(臨海亭)’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임해정(臨海亭)’은 어디에 있는가?

‘임해정(臨海亭)’은 삼척읍내에서 북쪽으로 1,4㎞ 떨어진 ‘와우산’ 끝자락에 위치하며, 삼척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는 정자인데, 이곳에서 남쪽으로 이틀거리가 되는 곳이 ‘헌화가’를 부른 곳이 된다.


3.‘헌화가’를 부른 위치

결론부터 말한다면 ‘헌화가’를 부른 곳은 울진읍 연지리 부근에서 북면 고포리 부근 해안이 아닐까 한다. 그 이유로는
① 당시 여러 사람들로 이루어진 행열 (적어도 10~20여명쯤으로 추산) 이라면, ‘하루에 몇 리(里) 정도를 걸을 수 있는가?’가 관건인데, 당시에는 도로여건이 아주 열악하여 경사나 굴곡, 구비가 심하고 길이 협소하였을 것이고, 더구나 많은 짐 보따리와 여인까지 끼인 행열이라면 먼 거리의 이동은 어려웠을 것이다.

②그러나 철쭉꽃이 만개했다면, 4월 하순이나 5월 상순쯤 이라고 보아 시기적으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때이므로 1일 보행거리가 다소 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③ ‘태수’나 ‘부인’은 말이나 가마를 탓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④ 당시 사람들은 주로 교통수단이 보행이었으므로 걷는 데는 이력이 났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 보다는 걸음걸이가 다소 빨랐을 수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여건들을 감안해 보면, 정상인들이 하루 약 100~130리 정도를 걷는다고 보면 약 70~90 리 정도를 걸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바, 이렇게 계산해 보면 삼척읍내에서 남쪽으로 140~180리 정도의 거리가 ‘헌화가’를 부른 곳이라고 추산이 되는 데, 울진에서 삼척이 70키로 정도로 175리~180리 정도이니, 울진읍 연지리 해안에서 북면 고포리 해안 정도를 ‘헌화가’의 지점으로 추산할 수 있다.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헌화가의 근거지는 울진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따라서 연지리 ~고포리간 현지를 답사해서 역사적 기록과 유사한 지형을 찾고 민간에 전해오는 구전설화를 폭넓게 채집하여 개발근거를 확보하는 한편, ‘해맞이 공원’을 겸한 ‘철쭉공원’ 또는 전문 용역기관의 자문을 받아 유적지를 겸한 관광명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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