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농모 배동분의 세계여행기 (7편)


 

세체니 다리위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땅, 땅, 땅!”1936년 장소는 프랑스 파리, 레이 벤츄라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콘서트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연주 도중 드러머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자살을 하고 뒤이어 또 한 명, 결국 단원 전체가 자살을 하는 충격적이 일이 벌어졌다. 실화다.

그들이 연주한 곡은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 였다. 아마도 전 세계인들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하면, 완전 자동으로 떠오르는 음악이 바로 <글루미 선데이>일 것이다. 이 곡은 1935년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떠나간 연인 헬렌을 그리워하며 쓴 곡이다. 흔한 레퍼토리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헝가리에서 음반이 발매되자마자 8주만에, 이 곡을 듣고 187명이 자살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헝가리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하는 일이 속출하자 자살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다.

작곡가의 연인 헬렌도 이 곡을 듣고 자살을 하고, 훗날 작곡가 레조 세레스도 자신이 작곡한 곡이 비극을 낳자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글루미 선데이>는 자살찬가, 자살의 송가, 자살을 부르는 노래, 자살교향곡 등 다양한 별명이 늘 따라 다닌다. 나 또한 청춘시절, 대학원 도서실에서 등짝에 땀띠나도록 앉아 시원잖은 머리로 공부에 몰두하다가 진로에 대한 회의가 오면 하필 이 곡을 즐겨 듣곤 했다. 당연히 심장에 기름을 부었고,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다. 멀쩡한 사람도 단박에 우울하게 만드는 약효(?) 좋은 곡인 것은 분명했다.

이런 아프고 절절하고 여러 사람 잡은 실화를 그대로 두었을까? 닉 바르코가 이 실화에 영감을 받아 <글루미 선데이>라는 소설을 출간한다. 또 이런 기회를 흥행에 민감한 영화계가 모르는 채 할 수는 없는 일!! 독일의 롤프 슈벨 감독이 이 소설을 원작삼아,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만들어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어 치명적인 우울함과 절절한 사랑이야기 외에도 <글루미 선데이> 라는 곡이 다시 부각되는 계기가 된다.

어느 나라든 소설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피할 수 없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긴다. 그것은 ‘스토리’ 가 기본빵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여행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또한 스토리로 유명한 곳 중 하나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 하나만으로도 먹고 들어가는데, 노래까지 두개골을 열리게 하는, 치명적인 절절함까지 가세를 했으니 어찌 되었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부다페스트가 이 노래와 영화 아니면, 별 볼 일 없는 곳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장미’ ‘동쪽의 파리’ ‘다뉴브의 진주’ ‘다뉴브의 여왕’ 등의 찬사가 껌처럼 붙어다니는 곳이다. 거기에 위와 같은 영화 스토리, 음악의 스토리가 도시 곳곳에 녹아들어가 여행객의 애간장을 태우기에 충분했다. ‘스토리’는 관광에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임을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며 또 한번 깨달았다.

오늘은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세체니 다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전 세계인들이 이 다리에 몰려드는 이유는 이 다리 건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이름을 딴 도나우강의 첫 번째 다리여서일까? 아니면 이 다리가 완벽한 비례를 갖춘 현수교이기 때문일까? 체코의 카를교와 비교될 만큼 야경이 끝내주기 때문일까? 아마도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과 영화가 주는 ‘스토리’가 한몫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주인공 자보와 일로나가 사랑하고 있을 때, 가난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나타난다. 세 사람의 사랑이란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라고 의문을 품겠지만, 여기서는 가당한 일이다. 결국 자보는 일로나를 향해 세계적인 명대사를 남긴다. 그것도 세체니 다리 위에서.... “당신을 잃느리 당신의 반쪽이라도 갖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세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다. 거기에 독인 대령 한스가 이들의 사랑에 끼어들면서 비극으로 끝이 난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를 연결한 최초의 다리이고, 헝가리의 상징과도 같은 다리다. 다리 앞 뒤로 4마리의 사자조각상이 있는 데, 이에 대한 전설이 또한 유명하다. 이 사자 상을 만든 조각가는 사자 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만약 완벽한 사자 상에 흠이 있다면, 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가 왜 사자 상의 입에 혀가 없느냐고 묻는 것을 들은 조각가는 도나우강에 투신자살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스토리에 정말 사자의 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세계 각국에서 여행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다리 하면 체코의 카를교를 빼놓을 수 없는 데, 카를교와 세체니 다리의 가장 큰 다른 점은 <글루미 선데이>의 노래와 영화 스토리가 주는 멜랑꼴리, 회색빛 짙은 아우라일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했다. 세체니 다리야말로 내 안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슬픔과 고독, 우울함 등과 마주하게 하고 그것들을 어루만지면서, 새롭게 눈을 뜨게 하는 곳이 아닐까.

우리네 삶에서 기쁨과 행복을 어찌 다스리느냐가 중요하기 보다 내 안의 아픔, 상처, 슬픔을 어떻게 보듬으며 가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런 것들에 시선과 마음을 두기보다 거죽이 삐까번쩍 빛나는 것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일은 헝가리 ‘어부의 요새’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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