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 논설위원)

 

벌써 반세기도 더 지난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싶다. 담임이었던 남주종 선생님과 우리 꼬맹이들은 학교 뒷마을 오릉갈(현 노음2리) 당두를 지나 성류산에 올랐다. 중턱쯤 이르러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모이게 하곤 우리에게 우리 학교인 노음초등학교, 근남면사무소와 경찰지서, 수산다리, 망양정, 비행장 등을 찾아보게 하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성류산 중턱에 오르느라 미처 보이지 않았던 저 멀리 망망대해 동해와 우리 학교와 면 소재지 노음(장터)마을 그리고 들판, 수산솔밭, 염전마을, 왕피천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고향인 산포1리 섬마실에서 보면 코앞인 망양정과 돛단배가 떠다니는 동해를 바라보며, 선생님은 우리 꼬맹이들한테 동해로 계속 나아가면 아주 큰 바다인 태평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바다같이 넓고 큰 뜻을 품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그때 태평양이라는 말도 둔산(산포)앞 바다가 태평양과 연결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릉갈 친구 말로는, ‘아주 맑은 날 울릉도를 바라보면 모락모락 아침밥 짓는 굴뚝 연기가 보인다’는 우스개(?)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로만 남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날 선생님과 함께 지역사회 마을과 주요 기관 등 우리 고장 살펴보기의 지리교육을 한 셈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남주종 선생님은 노음초등학교 교가 작사자이기도 하다.

그 무렵 성류굴 앞 냇가는 노음초등학교의 소풍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지금은 성류굴 앞이 주차장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는 자갈과 모래도 된 자연하천이었다. 성류굴에 처음 들어간 것도 초등학교 소풍 때였다. 어린 내 눈에는 말 그대로 지하 금강산이라고 할 만큼 신비의 세계였다.

성류굴은 7, 80년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성류굴 들머리는 늘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전국에서 천연동굴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해외 관광이 대세가 되자, 성류굴 관광객들이 크게 줄었다. 그간 지자체에서 성류굴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옛날만은 못한 것 같다. 어쨌든 성류산과 성류굴은 나에게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서린 곳이다.

성류굴은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된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다채로운 종유석·석순·석주에 안에 흘러든 왕피천이 지하호수를 형성해 경관이 특이하다. 성류굴은 원래 신선들이 한가로이 놀던 곳이라는 뜻으로 선유굴(仙遊窟)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과 누군가 불상을 굴 안에 안치하면서 ‘성스러운 부처(성인)가 머물던 곳’이라는 뜻의 성류굴(聖留窟)이라고 이름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고대부터 사람들이 드나들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료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 성류굴을 공식 탐사한 것은 1960년 10월이다. 완전 개굴까지 울진교육청부설 울진교육연구소 연구원(당시 교사)들의 공로가 컸다.

이들은 목숨을 건 3차례의 탐사로 당시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성류굴의 실체를 세상 밖에 드러냈다. 탐사보고서가 도교육감(당시 문화재 관리권자가 교육감)에게 제출되자, 조선일보와 KBS 방송으로 그 내용이 보도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 뒤 학계의 전문가들이 성류굴을 직접 조사하여 동제 숟가락, 철제 연모, 항아리, 숯덩이, 사람 뼈 등의 유물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성류굴은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음은 물론, 20억 년이나 된 천연동굴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최근 성류굴에서 암각문이 새로 발견되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암각문 일부에는 울진 성류굴에 신라 진흥왕 행차 등의 내용도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성류굴을 다녀간 인물들의 이름과 관련 역사적 사실을 동굴에 암각 해 놓았다는 것, 이처럼 동굴 바위에 당시 행적을 기록한 것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사료 가치가 아주 높은 국보급 유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간 성류굴 유적 탐사에 애쓴 울진군 문화유적담당 관계자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전하며, 울진군에서는 성류굴 일대를 새롭게 재조명하여 잃어버린 옛 명성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천년의 기억을 넘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성류굴 암각문! 이제 동굴은 새로운 빛을 만나 숨어 있던 역사 기록을 환히 비추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새 빛이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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