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의 최고 대목장 최중길의 망양정

 

요즘은 건축방식이 다양하고 누구나 건축기술을 쉽게 배울 수도 있지만, 불과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건축기술자는 매우 귀했다. 특히 한옥양식의 전통 건축물을 짓는 목수는 매우 귀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술이 뛰어난 목수를 대목수, 또는 대목장이라 했다.

그래서 중요하고 큰 건축 공사는 대개 대목장의 감각과 노하우에 의지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울진 출신의 최중길 대목장은 최고의 기술자로서 삼척이나 영덕 등지까지 초빙되었다.

특히 1958년도에 울진군의 요청을 받아 1959년도 8월15일에 준공했던,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 건물은 그의 역작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망양정 현존 건물은 2005년도에 신축한 건물이다.

최중길(崔重吉: 譜名 重弘)씨는 1918년(戊午) 1월 25일 근남면 노음리 매림동에서 父 최무순(崔武淳)의 맏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6.25 한국 전쟁 직후 국가시책으로 각 지역마다 학교를 신축할 때, 38선 지역인 강원도 최북단 지역의 학교 신축현장에 투신해 목수 일을 배웠다.

이후 여러 지역의 건축현장을 통해 전통건축에 대한 매력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 건축 기술자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몸소 일하며 배웠다. 어느새 그는 대목장 반열에 우뚝 서 있었다. 언제인가 울진의 대흥사 사찰 건물을 해체하여 이축을 해야 할 때, 너무 복잡하게 얽힌 구조라 해체할 기술자가 없었다, 그러나 최중길 대목장은 쉽게 해체하여 이축했다.

후일 정부에서 기능공 자격제도가 신설되어 다행히 그에게서 기술을 습득한 매화리 최규탁씨(1931년생)가 대목장 기능인 자격을 획득했다. 최규탁씨는 약 16년 전, 72세라는 연로함에도 서울의 오릉(五陵) 인근의 수목원에서 시행된 정부 주최 실기시험에 응시하여 단번에 합격함으로써 울진의 마지막 대목장이 된 것이다.
 


○ 1959년 망양정 신축

이 정자를 건축할 당시 설계도가 없었다고 하며, 오직 모든 것은 최 중길 대목장의 머릿속에 있었다고 한다. 비록 현대식 설계도는 그리지 못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관동팔경 건물로서 손색없는 최고의 걸작품을 설계하고 있었다고 보아진다.

사용한 목재도 대부분 구하기 힘든 금강송을 사용하였고, 복잡한 다포계의 공포를 직접 깎아 만들었다. 공포는 투박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이며, 서까래와 공포 사이에는 전국 어느 정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40마리의 비상하는 갈매기 문양을 조각해 붙였다.

또한 네 귀퉁이 귀서까래 밑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을 조각하여 붙였다. 당시 단청을 맡았던 장문희씨는 “용머리는 울진읍 대흥사의 용머리를 본 떠 만들었는 데, 전부 다 최중길 대목이 직접 조각을 했다” 고 증언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각들은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그만의 노하우였다.
 

그는 평소 술을 즐겨 마셨지만, 일 할 때는 항상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고, 늦더라도 계획된 작업량을 반드시 마치는 책임의식이 투철한 분이었다고 한다.

비록 소학교 출신이지만 학교 성적도 항상 1.2등을 차지했고, 책임감이 강한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망양정 신축기념으로 울진군 교육청으로부터 유기 밥그릇 셋트를 상으로 받았으며, 문화제 공로상으로 교육부에서 유기 밥그릇을 받기도 했다.

울진의 최고 대목장으로서 최고의 걸작품인 망양정을 남기고 1986년 12월27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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