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한다고 아내가 투정이다. 언제부턴가 새벽 6시면 눈이 떠져서 혼자 부스럭거리다가 안방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서 TV를 켜고 이리저리 두어 번 채널을 돌리면 어김없이 걸려든다. “나는 자연인이다”

비닐인지 천막인지 온통 시커먼 거죽을 덮어쓴 움막이 등장하고, 공사판에서 주워 붙인 알루미늄 문짝이 덜렁거린다. 문을 열고 나타나는 사내들은 딱히 수염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털 오라기들이 제멋대로 입가에 덥수룩하다.

거기에는 검불이든 밥풀이든 항상 뭔가 달려있다. 그런 사내가 고개를 돌리면 머리꽁지털이 대충 묶여서 달랑거린다. 그 아래 밤색 개량한복 목덜미는 새카맣게 반질반질하다. 그새 잠이 깬 아내가 거실에 나오면서 TV를 보고 소리친다. “딴 데 틀어. 제발!”

나는 TV 소리를 낮추고 계속 본다. 자연인의 마당 아궁이에 드디어 불이 피워지면 화면 가득 연기가 자욱하다. 장작불 위에는 숯껑이 딱지로 달라붙은 냄비가 올려지고 사내가 산에서 캐온 온갖 보약(?)들이 무작위로 투입된다. 냄비 속이 워낙 시커메서 무엇이 들어갔는지 분간이 어렵지만, 사내들은 키득거리며 군침을 삼킨다.

냄비가 끓는 동안 사내는 움막에 딸린 구덩이 속에서 대략 3년 쯤 묵어서 위에는 하얗게 매가 핀 쉰김치를 꺼내온다. 냄비 바닥 색깔과 구분이 안 가는 도마인지 나무토막인지에 올려놓고 시커먼 손으로 썰다가 가끔 손으로 쭉 찢어서 냄비에 집어넣는다. 나도 이 때 쯤에는 속으로 제발 카메라가 좀 멀리서 비춰 주기를 바라지만 카메라는 인정사정이 없다.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아침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 눈치를 봐가며 계속 시청을 하는데, 자연인들은 냄비 째 아무데나 대충 올려놓고 밥그릇도 따로 없이 푹푹 밥을 말아 잘도 먹는다. “캬! 죽인다. 강남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겠나.” 마침내 보다 못한 아내가 리모컨을 확 빼앗아서 TV를 꺼버린다. 그리곤 한마디 한다. “내참, 더러워서!”

옛날 중국 송(宋)나라 태조 때 학사(學士)를 지낸 도곡(陶穀)이란 사람이 있었다. 난(蘭)과 차(茶)를 좋아했던 선비로, ‘자연식(自然食)’ 모음인 청이록(淸異錄)을 지은 사람이다. 그가 하루는 태위(太尉) 벼슬을 하고 있는 당진(黨進)이란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가 당진(黨進)이 데리고 있던 가기(歌妓)에 반했다. 가기(歌妓)란 오늘날로 치면 스폰서의 개인 가수다. 도곡은 당진에게 간청을 하여 그 가수를 첩으로 얻었다.

도곡이 어느 추운 겨울날에 산길을 가기(歌妓)와 함께 걷게 되었다. 도곡이 앞서고 가기(歌妓)는 추위에 떨며 따라가고 있었다. 마침 길가에는 눈(雪)이 쌓여있었고 도곡은 첩에게 자신의 재주를 뽐내고 싶어서 쌓인 눈(雪)을 떠서 차를 끓여 마시게 하고는, “당 태위의 집에서는 이런 풍류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黨太尉家應不識此〕”라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가기(歌妓)가 대답했다. “그분은 멋이 없는 분이니, 어떻게 이런 정경이 있었겠습니까. 단지 금박 휘장을 친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제가 들려 드리는 노랫소리를 음미하며 양고라는 고급술을 즐길 따름이었습니다.〔彼粗人也 安有此景 但能銷金煖帳下 淺斟低唱 飮羊羔美酒耳〕”라고 했다. 그녀의 속마음은 “내참, 더러워서!” 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자랐던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 후 바다를 잃어버리자 모든 호사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내 생각에 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도 마찬가지다. 더러워도 그게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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