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71)

 

요즘 시를 쓰면서 음악적 리듬에 심취해 있다. 동요와 가곡의 시를 쓰는 일이다. 동요와 가곡의 형태로 불리어진다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반복의 리듬은 어떤 즐거움을 안겨준다. 리듬 속에서 운문이 생겨난다. 시가 작곡이 되어 음반으로 출판되고 유튜브에 올려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작품을 2019 kbs창작동요대회에 응모하여 본선에 오르기도 하였다.

문학에 발을 들여 놓고서 시집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내었다. 그동안 내가 낸 시집과 산문집을 모 유명 대학도서관에 기증하려 하였다. 대학교 도서담당자는 산문집은 받으나, 시집은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 그러느냐고 반문하였더니, 수납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나는 좀 고집을 피웠다. 최근 출간한 역사 학술서와 함께 두 권의 시집을 그 대학 도서관에 붙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집 두 권은 등록하지 않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약간은 허탈했다. 시집이 문전박대를 당한 셈이다.

현대사회는 시를 쓰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래서 시집이 양산되고 있다. 수납거절의 이유를 공간 부족으로 변명하지만, 현대시의 난해하거나 조악한 내용이 어떤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일반인들은 현대시에 대해 애매하고 모호한 것이 시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란 무엇인가. 시는 어떻게 써야하는가 라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엘리엇의 말대로 시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는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 라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하더라도 좋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설적 답은 있을 것이다. 좋은 시란 끊임없이 시어를 갈고 닦은 것이다. 리듬, 은유, 함축, 상상력, 낯설게 하기 등 말소리와 말뜻이 효과적으로 이어질 때 좋은 시가 탄생한다. 평가는 주관적이므로 어떤 잣대로던 평가할 수 있으나 절대평가는 없다. 그리고 감동을 주는 시가 좋은 시다. 감동은 공감을 끌어내어 작법을 초월한다. 좋은 시는 진실에 가까운 말로 가슴을 내리치는 울림이 있다 할 것이다.

파운드는 시를 음악시와 회화시와 논리시의 셋으로 구분했다. 현대시의 미학적 중심은 음악적인 차원에서 미학적인 차원으로, 지적이고 논리적인 차원으로 변모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에서 정서를 환기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시의 음악적 성격이다.

현대시가 이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정서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정서의 상실은 시를 무력하게 하고 그 결과로 시의 소외도 가져올 수 있다. 노동할 때의 율동적인 동작이 피로를 덜어준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시의 기원을 일꾼들이 노래를 하면서 벌이는 협동적 노동에서 찾기도 한다.

음악적 한 편의 시란 리듬과 이어지고, 의미의 유기적 결합으로 구성된다. 리듬은 시간적 동일성과 규칙적인 반복이기 때문에 경험을 질서화하고, 이 질서화속에서 자아 발견을 가능케 한다. 자아분열과 자아상실의 현대사회에서 자아의 통일성과 변하지 않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리듬은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어느 원로 시인은 『현대시창작입문』에서 “만일 시인이 대중에게 알기 쉬운 시만을 쓴다고 한다면, 초·중·고 학생들의 음악학습을 위한 노랫말을 짓거나 민요나 유행가의 작사자가 되고 말 것이다” 라고 우려하였다.

밥 딜런은 미국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시인이다. 시적인 가사와 포크 음악으로 대중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2016년 밥 딜런이 음악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밥 딜런이 ‘위대한 미국 팝 문화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그의 노랫말을 두고 그것도 시냐.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의 첫 번째 특징이 리듬이다. 노래는 모두 리듬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대중가요도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는 시라는 것이다. 우리 시의 율격을 어떻게 설명하든 운문이 산문에서보다 리듬고유의 쾌감을 풍족하게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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