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影寺 義湘殿 위치에 대한 小考

 

의상 등 眞影 모신 곳 옛 터만 남아

현재의 의상전은 본래 인현왕후 원당


 

1. 개요

불영사는 울진의 대표적인 사찰로 신라 진덕여왕 5년(561)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불영사는 임진왜란 때 큰 화재를 만나 거의 모든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비롯하여 3번이나 대형 화재를 만나 본래의 전각들은 거의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들은 거의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그중 의상대사나 원효스님 등 불영사와 관련된 고승들의 진영을 보관하던 의상전이란 건물은 오래전에 허물어져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본래 의상전이 있었던 위치는 불영사 대웅전 뒷산 봉우리로 바람이 매우 세찬 곳이다. 지금도 자세히 살펴보면 주춧돌과 온돌을 설치했던 돌들이 남아있어 건물의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있다.

의상전의 위치가 대웅전 뒷편 산의 가파른 암벽 정상에 있어서 오랜 세월 풍우에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 진 것으로 짐작된다. 건물이 유실되고 없으니 건축연대나, 망실 연대도 명확히 추론하기 어렵다. 다만 부족한 자료들이지만 고 문헌기록들과 잔존 유적을 통해 본래 의상전의 위치와 건축내력을 알아보고자 한다.
 

2. 임유후의 불귀사 기록

조선시대 임유후는 1628년 울진에 와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당시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중에 1630년에 지은 불귀사란 글에 불영사 의상전에 관한 내력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영상 기자헌(奇自獻)이 재물을 보시하여 회룡봉(迴龍峰)의 정상에 의상전(義相殿)을 창건하였다. 걸어놓은 글에 이르기를 “대시주 의정부 영의정 기자헌” 이라고 하였다. 내가 울진 지역에 우거하면서부터 일찌기 여러번 불영사를 유람하였다. 승려는 내가 산수를 좋아하기 떄문에 불영사 14경을 읊어주기를 청하여 갑자기 지어 주었다. 훗날 서응(徐凝)의 시문이 소동파의 필담에 도움을 받게 된다면, 또한 기이한 사적이 될 것이다. 경오년 (1630)가을에 기록하다.」

또한 임유후 선생의 불영사 14경중에도「의상전(義湘殿)」’에 관한 글을 지었다. “最勝僧仙殿 (최승승선전) 가장 경치좋은 신승의 전당/ 臨水石奇 (전임수석기) 앞에는 기이한 수석이 놓였네/ 相公偏好佛 (상공편호불) 상공이 부처를 좋아하네/ 功業見懸楣 (공업견현미) 시주 한 공로 현판에 걸려있네”

 


3. 김창흡(金昌翕)의 기록

김창흡은 1670년 10월 4일 울진에서 출발하여 불영사와 그 일대를 유람하고,「遊天竺山錄」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는데 이 글에 의상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선략...「다음으로 의상전(義相殿)에 올라가니 의상대사의 진영(眞影)이 보존되어 있었다. 굽이굽이 돌아 금탑봉 정상에 이르렀다, (중략)

다음날 향로봉에 올라가 보니 특이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의상대에 올라가 어제 다하지 못한 경관을 모두 보았다, 나를 따르는 승려는 경욱(慶旭) 등 9명이다. 의상대에서 바라보니 동쪽은 해운봉, 남쪽 끝자락 뾰족이 솟은 것은 종암봉, 그 아래는 단하동. 정남쪽에 남암봉, 가까이 겨드랑이 밑에 있으면서 예쁘고 둥근 모양을 한 것은 향로봉이다. 서쪽에 부용성, 가까운 5-6보 앞쪽에 우뚝선 것이 금탑봉,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의상전이다.

북쪽 끝자락에 학소암이다. 이곳의 모든 산은 시내(왕피천)의 남쪽에 있다. 시내(왕피천)을 가로막고 있는 벼랑이 입을 쫙 벌리고 성루의 문처럼 움푹 파여있는 것은 원효굴이다. 정 북쪽에 마주하여 너울너울 춤추는 듯한 것은 청라봉, 조금 떨어진 동쪽에 세 개의 뿔이 함께 솟아 구름 끝에 들어가 있는 것이 삼각봉이다. 이것은 모두 산에서 왕피천의 북쪽에 있다.」

 

4. 의상전의 위치

위의 기록들을 종합하면 ‘의상전’은 불영사 뒤쪽 시냇물이 돌아내려가는 회룡봉 정상에 있었고, 불영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진영(眞影)이 보관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각 안에는 영상 기자헌 대감이 시주한 내용의 현판도 걸려있었고, 전각 앞에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있음도 알 수 있다. 또한 의상전에 현재「의상전」현판이 걸려있으나, 이 건물은 본래 인현왕후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인현왕후 원당」이었다.
올라가니 사방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고, 용(龍)의 허리처럼 냇물이 돌아 내려가는 곳의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 의상전 건립자와 시기

현재의 의상전 전각 입구에 게판되어 있는 안내판. 의상전은「이조 순조10년에 (1810)중창하였으며, 불영사를 처음 세운 의상대사와 1300년 동안 불영사에서 수도하시던 훌륭한 스님들을 모신 곳」이라고 하였다.

의상전의 건립시기는 의상전 미간(楣間 방문 위)에「大施主議政府奇公(대시주의정부기공)」이라 써 놓은 점을 주목하면, 그 시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기자헌은 1614년에 영의정이 되었고 1617년에 파직되어 함경남도 홍원(洪原)에 귀양을 갔다가, 다시 함경북도 길주 로 옮겼다. 그 뒤 귀양에서 풀려나 강릉에 은거했다.

임유후가 불귀사라는 글을 지은 해가 1628년인데 이때 이미 의상전이 지어져 있었으니, 의상전을 건립한 것은 기자헌이 귀양에서 풀려난 1619경에서부터 1628년 임유후의 불귀사라는 글을 짓기 전으로 보인다. 또한 기자헌이 1623년에 울진지역을 유람하면서, 울진의 매야촌(매화)에 당도하여 주개신(朱介臣)과 윤몽열(尹夢說)에게 글을 남겨 고증에 정확성을 더 한다.

 

위의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기자헌 대감이 울진을 유람한 것은 1623년으로 보이며 이때 불영사를 돌아보고 좋은 장소에 전각을 세우고 역대 큰 스님들의 진영을 모실필요가 있다고 보아 보시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1623년 이후 건물 준공까지 2년여 정도 공사기간을 잡더라도 1925년 경에 의상전이 준공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의상전 건물이 풍우에 훼손이 심하여 약 190년 이후인 1810년에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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