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용(죽변 출향인)



* 옛날에 간날에 *

 

쇠죽이 익어가는 가마솥 부석에
생소깝 타는 연기는
굴뚝 아가리에서 하늘로 퍼지고,

깨 진 옹가지 떠꿍에
발라먹은 빼당구와 쉰밥 한 디~
찬물에 말아서 워~리 워~리,
할매가 개 밥을 주는 저녁다베~ 쭘

“시도뿌” 하고 손이나 들어야 서는,
모레이의 간이 버스 정류장으로
아지매 한분 두분이 모여들어
침침한 눈으로
저 멀리 건너 마을 고갯마루
모래이 끝을 계속 보고 계신다

만~데 일까?
잠시 후면 수 백리 비포장 도로를
핵 핵 대며 엉금 엉금 기어 올
대구 발 죽변 도마리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바로 그 차엔
꿈많고 아름다운 사춘기시절에
가족들을 위하여 머나먼 객지
가발공장, 편물요꼬공장 ,라디오공장,
완구공장, 미싱 공장 등으로
돈을 벌로 간,

너무도 애처롭고도 그리운
내 딸, 내 아들이
설날 고향에 오느라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울진 삼척엔 무장공비가 나타났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는
통치자의 노력에,
근면한 국민,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국민,

거기다 인건비가 낮아
외국의 노동집약형 산업들이
우리나라로 물밀듯이 밀려 와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지금의 잘 살기까지
산업 혁명이
숨 가쁘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잠시 후
군데군데 짜깁기한 각설이의 겉옷 같은
시외버스가 마을에 도착했다

바리바리 선물 보따리를 들고
처녀 총각들이 무디기로 내렸고
그들에게선 도시의 냄새가 풍겼으며
뽀얀 얼굴의 기초 화장에
세련된 의상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엄마의 앙고라 쉐타와 아버지 내복
그리고
동생들의 다배가 담겨있을
비니루 가방

우와~~돈 마이 버나보다,
너무도 가다시럽고 부러워 보였다

그들이 다 내릴 때 쯤 천
지가 개벽 할 일 또 하나,,
저승 사자 같은 월남에 간 옆집 시야가
따불 백을 미고
한 손엔 쌍 나발이 달린
대형 나지오를 들고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까맣게 탄 영웅의 그 얼굴이
너무도 자랑스러웠고
잠시 후
신기한 쌍 나발 라디오 소리가
온 동네로 퍼졌다,

그렇게 그날 저녁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
막걸리 담은 고무다라에 양지기 띄워놓고
비잉 둘러앉아 안주는 짠지 쪼가리에
엥미리와 돌미기 찜,

밤이 새도록 퍼마시며
코드렛스의 숫가락 마이크에
손바닥 심벌즈와 젓가락 드럼으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문주란의 섬마을 선생,
남진의 새까만 눈동자에,,기타 등등
목이 터져라 부르며

두 밤 후면 또 해어져야 하는 아픔들이지만
그래도 그날 밤은
그리움의 한을 맘껏 풀며
만남의 기쁨을 짝 물리도록 만끽했다,,
(이것이 지금의 할배, 할매들 그 시절 설날)

해가 바꼈다
한 두 해가 흘렀을까
하루는 방과 후
고향친구, 고향사람들이 그리워
공단 옆 그들의 자취집을
수소문 끝에 겨우 찾아 놀러를 갔다

아니,
이게 꿈인가 생신가 , 지옥인가 천국인가!
설날 차에서 내릴 때의
세련됨과 부자스럽던 그 모습들은
다 어디가고
남루한 회사복에 군데군데 뜯겨나간 도배지
그리고
폭 3자, 높이 6섯자의
비니루 비키니옷장 하나,

성냥갑 만한 벌집 방에
세사람이 지내며
코딱지 만 한 부엌에는
경칩 빠진 나무 찬장에
먹다 남은 김치와 간장. 콩나물 조금,
두부 반모,
부엌 구석엔 새끼줄로 끼워 낱장으로 파는
연탄 두 서너장과 다항 한통.
그리고
석유곤로 하나가 전부,
*이래서 훗날 신경숙 작가가
<작은방>이란 소설로
이들의 아픔을 기록했나보다*

순간
아~~
이런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절약과 노력으로
오직 고향의 가족들을 위하여
희생을 하다니,

친구들의 그 노력이
너무도 대단하게 보였고
한편
그 고생들은 내 가슴을 터지도록 아프게 했다
그러나 더 아팠던 것은
그 당시 일부인들은 산업역군의 그들을
공순이 공돌이라고 부르는 것이였다

세월 참 빠르다
어느새 산업 영웅,
공순이 공돌이 님들이
이젠 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귀여운 손주들을 데리고 올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한 해의 추석날이 되었으니 말이다

자~~
울진의 후예들이여
종일 비포장 도로를 달려가는
대구 발 죽변 도마리 완행버스가 아닌
내 자가용에, 앙고라 쉐타나 내복이 아닌
구스다운이나 덕다운을 사 실고
할배 함매가 된
고향 부모님께 효도 하러 달려가는
우리 울진의 아들 딸들이여

기왕에, 이번 추석날
이거 하나쯤 꼭 좀 알아줬으면 안되겠는가
부강한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고픈 배는 물로 채우고,
몸이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했으며,
슬퍼도 웃으면서 울어야 했던,
그 옛날 산업혁명의 시절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이 나라에 무슨 역할을 했는 지를 말이야.

♡다들 즐겁고 다복한 추석 되시길,,♡

(죽변중학교 11회, 죽변면 봉평1리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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