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의 행복 (14)


 

시집 온 며느리에게는 평평한 마당조차도 넘기 힘든 문전(門前) 고개가 있다. 며느리는 분명 한솥밥을 먹는 식구임에는 틀림없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아들을 낳아야 입지가 섰다. 시어머니로부터 열쇠꾸러미를 넘겨받기 전까지는 문전고개를 넘나드는 인내와 서러움으로 나날을 살아야 했다.

채집, 목축, 농경으로 이어온 육체노동 중심의 인류역사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소외되었다. 한국 여성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씨를 평생 가지고 산다. 이에 비해 결혼과 함께 남편의 성씨를 따르는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삶은 감히 우리와 견줄 수 없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를 뽑아서 만들었다”고 하는 데서 보듯이 중세의 마녀사냥은 물론, 현재도 자신의 딸이 능욕을 당했음에도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아버지가 자행하는 명예살인이 존경받는 사회가 여전하니 말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종교에서 더욱 뚜렷하다. 인권과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소위 고등종교들에서 차별 없이 ‘여성사제’를 인정하는 곳은 불교가 유일하다. 이것은 인류가 남성중심으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증거이다.

과거 전쟁에서 여성들을 전리품으로 여겨왔으며, 심지어 어떤 종교경전에는 점령지의 성인남성은 모조리 죽이고, 어린아이와 여성의 배분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기계화 이전 사회에 있어서 인간은 가장 정밀한 노동력이었으며, 생산력과 직결되는 노예는 국가를 유지하는 부국강병 그 자체였기 때문에 출산의 위대함이 오히려 감내하기 힘든 불행의 단초가 되었다.

각설하고, 여성들의 애환의 고개, 문전고개는 언제쯤부터 나타났을까? 먼저 무엇을 문전고개라 하는지 살펴보자. 전라도 ‘진도아리랑’에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라는 대목이 있다. 아무리 새겨보아도 뭔가 석연치 않다. 본렴인 ‘먹이는 소리’와 후렴의 ‘받는 소리’로 구성된 민요에는 우리나라 지명뿐만 아니라 중국의 고사(古史)나 지역특산물, 자연풍광 등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런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대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진도아리랑의 ‘문경새재’는 일반적인 사례와 다르기 때문이다.

}밀양아리랑의 “날 좀 보소….…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는 사랑표현에 무뚝뚝한 경상도 남정네들의 성품에 답답해하는 아낙들의 표현이듯이 먹이는 소리(사설)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대중의 공감을 얻어 생명력을 가진다. 만약 진도(전라도)가 지리적으로 반드시 문경새재를 통과해야만 서울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과거 낙방을 거듭하는 남편 뒷바라지 애환의 심정이거나 장삿길에 나선 서방이 한 눈 파느라 돌아오지 않는다는 풍문(風聞)에 대한 원망과 기다림일 수 있다.

필자의 오래된 궁금증은 ‘진도아리랑 대회’에 출전하신 103세 백원석 어르신의 “문전 새 고개가 웬 고개인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에서 완전히 풀렸다. 여기서 ‘구부(丘阜)’는 ‘고개’로서 ‘뫼’보다는 낮은 일상에서 매일 넘나들어야 하는 비탈진 언덕을 말한다. 그래서 ‘문전 새 고개’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친정에서는 겪지 못했던, 문만 열면 마주치고 넘어야할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표현한 것이다.

토박이말을 살펴보면, ‘문경새재’가 아니라 ‘문전 새 고개’가 더욱 명확해진다. 한자 산(山)에 해당하는 토박이말은 ‘뫼’이며, 목재를 생산하기 위해서 특별히 관리하는 곳은 ‘갓’이라하고, 사람들이 넘나드는 ‘뫼’를 ‘재’라 한다. ‘고개’는 ‘재’보다 훨씬 낮은 동네주변에 있어 농사일 등으로 일상적으로 넘나드는 언덕이다.

이처럼 시집살이는 문만 열면 고개를 넘는 것과 같은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살펴본 것처럼 문경새재는 일상으로 넘나드는 고개가 아니라 아주 높은 ‘뫼’에 난 길이다. 그래서 일상으로 마주치는 ‘고개’와는 거리가 있어 ‘문전 새 고개’가 설득력을 가진다. <다음호>에는 문전고개가 높아지게 된 연유를 알아보려 한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