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 성대히
출향인 김정석의 정효국악문화재단 주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각국에 흩어진 한민족 전통예술인들이 모국에서 우리 소리와 춤으로 하나 되었다. 울진(월송) 출신 김정석 회장이 설립한 정효국악문화재단은 지난달, 5개국 40여명의 한민족 동포들이 함께 참여하는 '제1회 세계 한민족 공연예술축제'를 개최하였다.

이 축제에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8명을 비롯해 중국동포(12명), 재일동포(8명), 재미동포(1명), 탈북인(1명) 등 40명이 예술인이 참여하여, 3일 간 예술의전당과 남산국악당, 정효국악문화재단에서 우리 전통예술 공연을 펼쳤다.

이에 국내 국악인들도 대거 동참하여 우애를 더했다. 첫날 예술의전당 국악당에서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 워크숍에서 김정석 이사장의 인사말은 참석자 모두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임명룡 서울지사장

 


김정석 재단이사장 인사말(요약)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리랑은 민족의 영혼이 새겨진 또 하나의 애국가로서 민족 이산(離散)의 구심점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36년간의 나라 잃은 역사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영혼은 살아 있었다. 연해주 등에 이주했던 고려인들은 1916년 세계1차대전 당시 4,000여명이 러시아에 강제 징집되었다.

이들 중 포로로 잡혀 독일 프로이센 수용소에서 갖힌 고려인들은 구성진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고, 이때 녹음된 자료가 현재 독일 훔볼트대에 디지털 음원으로 보관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 사람이 아니고, 시베리아에서 이주한 고려인 3세라고 당당히 주장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다.
 

1937년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블라디보스톡에서 짐짝처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강제 이주 당했던 연해주 고려인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단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도 잔치, 결혼식 광복절 행사 때면 아리랑을 합창하고 있다.

1592년 4월 일본의 풍신수길은 15만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여 20여일 만에 서울을 함락시시켰다. 조선인 12만명(20만이라고도 함)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본국으로 보내 전과를 기록했다. 지금도 조선인의 코무덤이 일본의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귀무덤 이라는 명칭으로 있다.

일본의 오키나와 본섬 나하랑에서 떨어진 아카지마(阿嘉島) 에는 지금도 ‘아리랑 고개’ 가 있다. 세계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인 소녀들이 이 고개에 올라 아리랑을 부르며, 고향을 그려 명명되었다고 한다.

1636년 병자호란시 청국에 노예로 끌려간 50여만명의 젊은 남녀들, 노예로 물건처럼 시장에서 인신매매 당하면서도 아리랑을 부르며 살아 남았다.

아리랑은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 15번째로 2012년에 등재되었다. 전 세계로 흩어져 갔던 우리 한민족이 한 세기가 넘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아리랑, 예술 DNA라 할 수 있다.

초기 이주 세대를 넘어 2세, 3세로 지나오면서 우리의 한글과 문자가 점점 잊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장단과 선율에 함께 어깨를 들썩거리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공통 심성이 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민족이 앞으로 번성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이에 정효국악문화재단은 해외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민족 공연예술인들을 격려하고 하나가 되는데 기여하고자, 올해부터 ‘제1차 세계 한민족 공연예술축제’를 마련하였다.

이 축제를 계기로 한민족의 국악 정서가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로 발전되기를 기원하고,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이 하나로 뭉쳐지는 계기가 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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