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늙은이는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을 요구하는 어떤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오정희의 단편소설 <동경(銅鏡)>에 나오는 말이다.

생명체의 뇌는 외부의 자극신호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반복행위를 통해 익숙해진 길을 우선 택한다. 반복행동으로 쉽게 처리된 과정을 뇌신경 회로에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자동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생체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 줄여 ‘편함’이라는 보상을 얻지만, 습관은 그렇게 해서 고착(固着)된다.

말미잘은 유충(幼蟲) 상태에서 이동 생활을 할 때는 뇌가 존재하다가 바위에 고착(固着)하고 나서는 뇌가 사라진다. 환경변화가 많은 이동에는 외부의 정보를 처리할 뇌가 필요하지만, 고착 환경에서는 반복행위의 속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말미잘 성체는 생체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뇌를 포기하는 쪽을 선택했다. 뇌는 외부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익숙한 길을 고집하지만, 메커니즘이 극히 단순해지면 뇌가 필요 없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습관에만 의지하다 보면 생각 없이 살게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습관을 고치는 방법이 반성이다. 반성을 통해 새로운 외부자극에 도전해야 하며, 새로운 반복행동을 뇌신경 회로에 저장하는 것이다. 상당한 모험과 부단한 노력 그리고 보상이 뒷받침이 돼야 가능하다. 어쩌면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습관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노인이 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습관적으로 자신의 경험에 집착한다. 확정편향이 익숙해져 기존 결정을 뒤집고 반성할 용기도 안 난다. 그래서 늙는 것이 두렵다.

과거 우리는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늙음’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새로울 것이 없는 미래는 습관을 고치도록 반성을 강요받지도 않았고, 종적서열은 연공(年功)이 받쳐주었다. 근래에 와서 ‘횡적서열’이란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과거 동아시아 사회에는 없던 말이다.

물론 종적서열이라는 말도 없었다. 종(縱) 자체가 서열이고 질서였다. 횡(橫)은 종의 질서에서 어긋나고 파괴하는 행위로 보았다. 전횡(專橫) 횡포(橫暴) 횡령(橫領) 횡행(橫行) 등이 그렇다. 아직 구조가 완전히 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사회는 급속도로 횡적 또는 수평적으로 바뀌고 있다. ‘나이’가 대우받던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불과 몇 년 뒤, 2026년이면 우리사회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대우할 자원조차 없다.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외부자극은 뇌의 끊임없는 반성과 새로운 습관을 요구한다.

최근 심리학에서는 어떤 사람이 ‘잘 늙은 사람’ 일까 하는 문제를 논할 때, 기존에 정의됐던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 에서 더 나아가 ‘성숙한 노화(psycho-socially matured aging)’ 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성공적 노화는 개인적 차원에 초점을 두어 신체적 건강성을 중시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신체를 오래 유지하는가, 또는 기억력 감퇴를 막아서 어휘력이나 인지적인 유능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떤 관리가 필요한 가를 살폈다.

‘성숙한 노화’는 성공적 노화가 말하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능력까지 중시하는 노화 개념이다. 사회적 구조 안에서 젊은 세대와 폭넓은 대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과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책임의식이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 성숙한 노화의 지향점이다. 점점 잘 늙기도 힘든 세상이다.

기대할 것은 65세가 되어도 앞으로 30년, 40년 ‘새로운 삶’이 남는다는 백세시대 희망이다. 새로운 삶이 보장만 된다면 습관을 변화시키는 모험도 얼마든지 시도해 볼 만하잖은가. 그러기 위해선 일단 반성 잘하는 습관부터 새로 만들어야 될 것 같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