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길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

 

아파트 10층에 살면서 공중까지 화분을 여럿 가져다 놓았다. 말하자면 땅을 잃고서, 그 땅을 겨우 한 삽씩 떠 가져온 것인데, 나무와 꽃들이 제 크기를 찾아 자라는 틈엔 돌멩이만 포개 놓은 것도 있다. 내 딴에는 숲과 수풀 사이 바위계곡도 곁들이겠다는 심사여서, 언젠가 궁금한 방문자 앞에서 나름의 해설을 곁들일 준비도 마쳤다.

나는 그들의 집사다. 원래 그들의 가지를 쳐주는 것은 바람의 일이고, 물을 주는 것은 구름의 일이었으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나는 바람과 구름이 되어 자연의 일을 하는 것이다. 넝쿨을 뻗는 것들에게는 천장까지 낚싯줄을 달아 휘감을 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꽃대 주변에 생기는 깍지벌레가 자주 끼는 것들을 위해 방재용 노란 분무기를 장만해 안개를 뿜어주기도 한다.

나의 성의와는 무관하게 그들은 이 집사가 성에 차지 않은 듯하다. 나눠 심거나 줄기꽂이로 화분이 늘어나는 만큼, 시들시들 앓다가 고사하는 것들도 꽤 되니 말이다. 더군다나 매일 일터로 나가 집을 비우는 터라 사시사철 실온에 있지 않으니...

그런데도 봄이면 봄을 알고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가을을 알고 잎을 떨군다. 한 움큼의 흙에도 잊지 않고 우주의 섭리가 찾아왔다고 해야 할 지, 이들이 자신들만의 질서로 우주를 이루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때에는 정말 화분들이 하나씩의 위성 같다. 10층 높이에 떠서 지구 주변을 빙빙 도는 달밤에 거기 집을 짓고 살 수는 없으나, 멀리 바라보며 꿈꿀 수 있는 달 말이다.

“흐르는 달의 흰 물결을 밀쳐
여윈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고독을 반려(伴侶)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누가 있어만 싶은 묘지엔 아무도 없고
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폭 젖었다“

윤동주의 시 ‘달밤’은 고독감과 시적 정감 그리고, 시각적 환상을 선명하게 표출시켜 놓았다. 가을 달을 보면,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꾼다. 뭔가를 사랑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 생각나는 것도 있고, 다짐할 것도 있고, 진실의 눈이 필요할 것도 있다.

어느 가을밤 우리 머리 위를 빙빙 돌던 달처럼 그 속에서 죽어가는 풀잎도 있지만, 새롭게 살아나는 식물도 있지 않을까...
미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구월의 달처럼 밝은 빛이 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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