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무 굉 (전 후포고등학교장)

 

무더위가 지나간 저편 파란 가을 하늘이 얼굴을 내밀면, 땀의 보람이 알알이 영글어가는 들녘엔 풍년의 황금물결이 우리의 가슴을 흐뭇하게 한다. 이른 봄 씨앗을 뿌리고 가꿔 온 보람을 얻는 즐거움, 이것은 바로 삶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행복! 이것은 인생 삶의 목표이다. 행복과 행운은 모든 사람들이 원한다.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어떤 사람은 일생을 순탄하게 잘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일마다 고뇌가 겹쳐 늘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의 근본은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이치이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해도 잘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얘를 써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운이 좋아서 또는 복을 잘 타서 란 말을 한다.

실제 세상을 살아보면 꾸미고 기획하는 것은 인간이 하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꼭 자기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 이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는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정말 인생사에 운이란 있는 것인가? 운이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하늘에서 복이 뚝 떨어지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참으로 신묘하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원인에 의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운이란, 그 원인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하는 문제는 참으로 흥미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운(運)은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만사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는 데, 운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의 사주팔자가 아무리 같아도 사람마다 복록이 다른 것은 윗대 조상님들의 음덕에 따라 복이 달라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좋은 운과 복을 누리고 싶은 데, 그것은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윗대 조상님들의 음덕이 쌓여야 좋은 운이 오고 복을 받는다고 생각된다.

인생의 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 말없이 뿌린 작은 적선공덕이 쌓여 자손의 토양에 좋은 거름이 되어 말없이 돌아오는 자연 순리의 현상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앞만 보고 인정사정없이 살아가지만, 생각해 보면 자연의 이치는 보이지 않는 귀중한 순리의 숨결에 의하여 진행되어 감을 암시해줌을 느낀다.

명심보감 계선 편의 “積金以遺子孫 이라도, 未必子孫이 能盡守요, 積書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이 能盡讀이니 不如積陰德於 冥冥之中하여 以爲子孫計니라” 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돈을 많이 모아 자손에게 남겨준다 해도 그 자손이 이 재산을 지키지 못 할 것이고, 책을 많이 자손에게 남겨준다 해도 그 자손들이 반드시 다 읽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남모르는 가운데 음덕을 쌓아 이것으로 자손을 위한 계책으로 삼느니만 못하다)
삭막한 세상 막 돌아가는 오늘을 보면서, 진정 인간답게 살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우리 생각해 봐야겠다.

이 세상을 살다가 돌아갈 때 우리는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눈에 보이는 논, 밭, 집, 돈, 보석은 두고 가지만 자기 이름의 주머니 속에 평생 쌓아온 인심과 지식 지혜 모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가지고 간다. 몇 권의 책이나 작품을 남긴 것 말고는 다 가지고 가지 않는가?

좋은 음덕 좋은 인심을 쌓아 두면, 뒷날 세상 떠난 후에도 사람들은 그 인심 그 음덕을 이야기 하리라 생각된다. 결국 운의 원인은 적선의 공덕에서 오는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늘 내가 가는 길에 꽃씨를 뿌리면 내 후손들은 꽃길로 갈 것이고, 소금을 뿌리면 사막 길을 가는 것이 자연이 이치임을 생각할 때, 모든 운도 복도 내 가슴안의 생각의 바른 실천에 의하여 결정됨을 느낀다.
영원히 살아남을 나의 인심을 생각하면서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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