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출판사에 신입사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내가 교정한 원고를 사진식자 제작소로 넘기기 전에 편집장께 점검을 받고 나면, 원고지에는 온통 빨간 펜 자국이 난무했다. 편집장은 한차례 혼찌검을 내고 나서 담배를 물고 나간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는 동안 전부 고쳐 놔!” 그럴 때면 예전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젖은 담배 한 대 꺼리’ 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픽 웃다가 또 혼이 나곤 했다.

옛날 우리 어른들은 일처리를 제 때 못하고 오래 끌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깟 젖은 담배 한 대 꺼리를 가지고 온종일 허비한다고 퉁을 주곤 했다. 그냥 담배도 아니고 왜 하필 ‘젖은 담배’일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도 그 말이 참 재미있었다. 젖은 담배는 불이 바로 붙지 않으니 말릴 시간이 필요하거니와 피우는 동안에도 연기 때문에 느긋할 수가 없다. 시간과 더불어 꽤 힘든 과정이 뒤따른다. 일이 서툰 사람에게 퉁바리를 놓는 이가 굳이 젖은 담배라고 한 이유도 그 일이 가볍게 처리될 일은 아니라는 암시가 ‘젖은’ 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정조대왕은 당대 최고의 학자이기도 했다. 초계문신 제도를 만들어 규장각을 축으로 문신들에게 경사강의(經史講義)를 실시했다. 정약용 서영보 이기경 김희순 등 37세 이하 젊은 문신들이 대상이었다. 신하들에게 과제를 내주어 발표하고 내용을 토론하게 해서 점수를 매겼다. 또 임금이 직접 강의 계획을 짜서 가르치는 친강(親講)과 임금 앞에서 시를 짓는 친시(親試)도 매월 1차례씩 있었다.

한번은 동지사(冬至使) 파견을 앞두고 친시(親試)를 실시했는데 재미있는 일문(逸聞)이 있다.
정조가 제시한 시제(詩題)는 ‘온 세상 사절이 황제께 절을 드리네 (萬國衣冠拜冕旒)’였다. 첫 번째 시합에서 정약용 서영보 이기경이 각각 만점의 세 배씩 받았다. 젊은 천재들을 보면서 뿌듯해진 임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채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다른 시를 짓게 했다.

제목은 ‘태평만세 네 글자가 가운데에 놓였네 (太平萬歲字當中)’ 였다. 정조임금은 옆에 있던 승지(承旨)에게 담배를 한 대 피우게 하고는 “담배 한 대 다 피우기 전까지 시를 지어라” 는 단서를 달았다. 신하들은 눈에서 ‘콩’이 튀었다. 승지의 담배가 타들어갈 때 신하들 속도 같이 탔을 것이다. 아무튼 세 사람은 담뱃불이 꺼지기 전에 시를 지어 올렸고 이번에도 동점이었다.

정조는 채점이 끝나자마자 세 번째 시제를 걸고 또 시를 짓게 했다. ‘아침마다 붓대 들고 군왕을 모신다네 (朝朝染翰侍君王)’ 였다. 정약용이 1등을 했고 총점 27점을 획득했다. 그리고 성은에 감사하다는 시를 한편 지어 올렸으니, 전부 합쳐 4편을 지은 셈이다. 사람들은 이날 ‘담배 한 대, 시 한편’ 을 칠보시(七步詩)에 비유했다. ‘칠보시’ 는 일곱 발자국을 걷는 동안에 짓는 시를 말한다.

220년(建安 25년), 스스로 위왕(魏王) 이라 칭했던 조조(曹操)가 병으로 사망하고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지위를 계승했다. 그런데 누군가 조비의 동생 조식(曹植)이 조정을 비난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린다고 고해 바쳤다. 조비는 즉시 조식을 잡아 올려 심문했다. 두 사람의 모친인 변태후(卞太后) 의 만류로 일단 사형은 면했지만, 조비는 빌미를 만들어 동생을 죽이고자 했다. 네가 시작(詩作)에 능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에 시를 지어라, 만약 시를 짓지 못한다면 너를 죽이겠다고 했다.

이에 조식은 걸음을 떼며 시를 지어 읊었다. “콩대를 태워 콩을 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자랐건만/ 어찌 이다지도 들볶는단 말인가.” 이 시로 조식은 목숨을 건졌지만, 워낙 들볶여서 그랬는지 나이 마흔에 죽었다. 어쩌면 재촉이 없어도 글을 짓는 자체가 들볶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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