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농모 배동분의 세계여행 (11) ...오트리아 할슈타트의 철학


 

2017년 화두는 휘게 라이프, 욜로 라이프였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휘게(Hygge)의 뜻은 뭐 삐까번쩍한 라이프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르웨이의 명사로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 나른함의 뜻을 담고 있다. 다름 아닌 따뜻하고 편안한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확행’ 이라는 말과 결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욜로란 YOLO의 약자인데 즉,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의 첫 자를 딴 것이다.
말 그대로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한 번뿐이니 흥청망청 살라는 뜻으로 혹은 고삐풀린 삶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지금!”에 방점이 찍힘을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비슷한 삶의 문양을 가진 ‘카르페디엠(carpediem) 이 있는 데, 라틴어로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뜻이다.
카르페디엠의 방점 역시 “지금!” 이다.

우리 세대만 해도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고통과 불행을 감수하는 삶을 살았다. 동백꽃 이파리처럼 반질반질하고, 삐까번쩍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담보하는 삶이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미래’가 아닌 ‘지금’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지금 소소한 행복을 최선의 행복이라 여긴다는 점이 큰 차이임을 알아야 한다. 여행 또한 카르페디엠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지금 유럽은 한국 사람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북적인다. 위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덕분이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를 말할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호수마을이라고 하면 이미 설명 끝이다. 우리나라 윤석호 감독의 <봄의 왈츠> 도 이곳 할슈타트가 배경이 되었다.
알프스 산과 70여 개의 호수로 이루어진 잘츠캄머구트는 오스트리아 빈과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 중에서 ‘찰츠캄머구트의 보석’, ‘동화마을’ ‘치유와 힐링의 호수마을’ 이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할슈타트는 유럽 배낭여행자들에게 필수코스라 할 수 있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어느 정도의 풍광인지는 찍어 먹어보 지 않아도 알 것이다.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중국이 오스트리아 할슈타트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중국 혜주에 아예 할슈타트 마을 전체를 똑같이 복제하여 복사판 할슈타트 마을을 만들었을까.
할슈타트 마을은 아름답고 동화같다는 점도 있지만,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세월과 시간을 품은 고풍스러운 풍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을 중국은 간과한 것 같다. 유럽에서 동화마을로 손꼽히는 독일의 로텐부르크나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도 가보았지만 그 중 으뜸은 할슈타트였다.

할슈타트는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한 집 한 집 현관마다, 창문마다, 꽃과 나무, 장식품이 말을 걸어와 발길을 멈추게 한다. 거기에 가세하여 맑은 호수는 데칼코마니 반영에 빠져들게 하고 어느 새 백조 떼들이 둥둥 떠다니며, 또 하나의 명화를 만들어 내는 곳, 할슈타트... 그렇기에 세계 각지에서 여행객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나 보다.

그렇다면 이 모두가 저절로 그렇게 아름다운 조합이 되었을까? 아니다. 마을 주민 모두가 하다못해 집 앞에 놓인 꽃의 색깔을 고민하고 물을 주고 가꾸고 관리하는 등 모든 노력을 한 결과라고 한다. 마을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성당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옹기종기 자석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한 집 한 집이 예술작품으로 집을 타고 올라간 나무가 한 폭의 명화가 되어 세계의 여행객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안 찍으면 큰일 날 것처럼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런데 내가 두 번째로 놀라고 감동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묘지풍경이었다. 그것도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교회 앞 마당에 묘지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우리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중앙에 공동묘지를 둔다는 것이...

한 묘지에 가족의 유골을 묻는 풍습은 그렇다치더라도 마을 한 가운데에 아직도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과, 그 묘지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할슈타트의 분묘문화는 묘지에 매장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으나,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을 다시 발굴하여 납골당에 보관한다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묘지풍경을 보자 라틴어 경구로 잘 알려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 또한 요즘 핫한 경구 중 하나다. 이것은 ‘죽음을 기억하라’ 는 뜻으로 인생무상을 표현하는 데 이만한 문구도 드물다.

묘지마당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호수와 아기자기한 집들을 보고 있자면 어디선가, “죽음이 그대들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행복하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드잡이 하듯 욕심내는 삶을 위해 내달리는 우리에게 브레이크와 같은 존재로 묘지들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임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어쩌면 “카르페디엠”과 “메멘토 모리”라고 귀에 딱지 앉듯 외칠 필요 없이 삶 속에서 그것을 늘 느끼며 살라는 철학이 있는 할슈타트의 묘지풍경은 오래오래 각인될 것이다. 여행은 그래서 가치있는 일이다. 지금 여행 컨셉은 즐기고 감상하는 것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다시 용기내어 꿈꾸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인생이란 순간순간 이 삶에서 저 삶으로 옮겨가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것을 먼나라 세계인 듯 잊고, 욕심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다른 유럽의 동화마을들이 예쁘고 아기자기하여 눈이 호강했다면, 할슈타트는 “삶과 죽음의 철학”까지 내포하고 있어 내 영혼까지 보듬을 수 있었던 곳이다.

새해에는 “카르페디엠”과 “메멘토 모리”를 화두로 삼으려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새해이고 싶다.
“당신은 새해 무엇을 화두로 삼으려 하는지요?”

*배동분은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00년에 금강송면으로 귀농했다.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과 <귀거래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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