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의 사노라면 2

 

‘따르릉... 따르릉... ...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더 꼽을 손가락이 없을 만큼 듣고 또 듣고 있는 안내음성이다.
처음 두 세 번은 ‘뭐 한다고 전화를 이렇게 안 받지?’ 짜증이고, 대 여섯 번이 되면 ‘어디 아픈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된다.
그 이상의 부재가 이어지면 이제 비상사태다.
오만가지 불길한 상상들이 몰려와 모든 신경을 옥죈다.
초조하고 불안한 이런 상황에서는 생각과 행동이 허둥지둥 맥락이 없어진다.

이틀 만에 임계점에 다다른 그 때, 낯선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익숙하고 씩씩한 음성으로 “내다!” 그 두 음절을 듣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깊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팽팽하게 당겨졌던 극도의 예민함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순간 걱정에 잠시 감추어 있던 짜증이란게 폭발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이 전화는 또 누구거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한참을 쏟아내는데 수화기 너머가 조용함을 감지했다. “듣고 있어? 어? 듣고 있냐구! 끊었어?”
의미심장한 웃음소리와 함께 나를 무릎 꿇게 만든 한 마디! “안 바쁘나!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전화를 했다고!”

‘맞다. 그렇네. 그랬다.’ 바쁘면 일주일 동안 전화 한 통 안 할 때가 있었는 데...
오랜만에 전화해서 울진 말로 ‘아다리’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 니 바쁜데.. 뭘...”
“ .... 바쁘면 말고 .. ”
“ 바쁘더라도 부탁할게 .. ”
어쩌면 더 말하고 싶으셨을지 모른다. 전화기를 잃어 버리셨노라고.
‘바쁜데.. 바쁠거니까.. 괜히 또 신경 쓰게 뭐하러..’ 시시콜콜한 그 말을 얼마나 삼키셨을까?

초코파이 광고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가 과연 있을까?
그 노래 후렴구를 아는 사람은 없다.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 몸짓만 보아도 알아요.’
 

눈빛을 마주할 수 없는 거리에 있다면 말해야 한다, 몸짓을 나눌 수 없는 시간을 보낸다면 말해야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야 중요한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바빠도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하여
소중한 시간을 내어 귀를 열고 입을 열 수 있는...
따뜻한 연말이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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