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연말연시를 맞아 지고 뜨는 해를 좇아 여기저기 사람들이 몰린다. 동해안에서 나고 자라 일출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뜨는 해 보다는 처연하게 사라지는 낙조에 감동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몰 여행이 잦은 편인 데, 우리나라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고르라면 나는 첫손에 강화도 서남부 일대를 꼽는다.

근래 화도면 장화리가 일몰조망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화도면 양도면 어디든 우열을 가릴 것 없다. 고개를 넘어가는 노을이 하도 아름다워 이름이 ‘하일(霞逸) 고개’ 인 곳도 그 안에 있고, 아예 마을이름이 ‘놀골(霞谷)’인 데도 있다.

조선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핍박을 받아가며 양명학을 일군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가 말년에 초당을 짓고 기거했던 곳이다. 거기서 건평리 ‘해가 지는 마을’까지 걷다보면 왼쪽으로 건강한 강화갯벌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건평나루의 경우 밀물썰물에 따라 만조와 간조 사이 해수면이 6미터를 오르내리니 그때마다 풍경을 달리하는데, 노을이 갯벌을 따라 가장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간조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런 점에서 밀물썰물이 없는 동해안 풍광은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원호가족인 나는 6개월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쳤다. 해안부대 행정병으로 복무했는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중대장이 막 전입해 온 신병들에게 해안경계 근무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동해안은 밀물썰물이 없기 때문에 지형변화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바위가 많고 파도가 높아서 각 지형을 숙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현지출신 방위병과 현역병이 1조가 되어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질문시간에 당돌한 신병 하나가 손을 들었다. “동해에 밀물썰물이 없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중대장은 얼굴이 붉어졌고 계원들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공계 출신 계원이, “달의 인력과 지구의 원운동이 복합적으로 일어나서.......바닷물이 높았다 낮았다 하는데 동해안은 물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끝났지만 중대본부 행정병들은 신병들 모르게 중대장실로 불려가서 원산폭격 자세로 얼차려를 받았다. “대학물을 먹었다는 놈들이 동해에 밀물썰물이 없는 이유도 몰라!” 인터넷은커녕 웬만한 서적 한 권 구할 수 없는 시골 바닷가에서 계원들은 동해에 조석(潮汐)이 없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뉴턴의 타원운동과 관성, 지구의 구심력과 조석파(tidal wave) 그리고 동해안의 수심과 무조점(amphidromic point) 에 대해 공부한 결과! ‘물이 많아서’가 맞았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동해에 조석(潮汐)이 없는 이유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밀물썰물이 일어나는 것을 대지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호흡현상으로 여겼다. 계곡(谿谷) 장유(張維)는 “사람이 호흡할 때 배는 움직여도 등은 움직이지 않는다. 조선 땅의 형세를 보면 동북쪽이 등이고 서남쪽을 배라 할 수 있다. 배에 해당되는 부위에서만 호흡이 나타나고 등에 해당되는 부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동해는 등에 해당하니 潮汐이 없는 까닭이다.”

구암(久庵) 한백겸(韓百謙)은 조석을 사람 몸의 혈맥에 비유했다. “땅 위에 바다가 있음은 사람의 뱃속에 피가 담겨져 있는 것과 같다. 기운을 내불면 위로 오르고, 빨아들이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바로 조석이다. 북동쪽에 조석이 없는 까닭이다.”

하담(荷潭) 김시양(金時讓)은 “물은 하늘과 함께 왼편으로 돈다. 그렇기에 적도에서 북쪽 땅은 모두 물이 동남에서 올라온다. 일본 땅은 북쪽이 호지(胡地)에 붙었고, 남쪽은 어귀를 가로막아서 동해는 곧 하나의 호수다. 조석은 본디 동남에서부터 오는 것이니, 그 세가 동해에 미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는 인조임금이 “동해에 조석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선천도(先天圖)에 따르면 동북은 양(陽)이요 서남은 음(陰)이라고 했습니다. 음에는 영축(盈縮)이 있고 양에는 영축이 없습니다. 그런 바로 서남해는 조석이 있고 동북해는 조석이 없는 까닭입니다. 달은 넘치기도 하고 부족하기도 하지만, 해는 일정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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