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논설위원)

 

그 날도 나는 멋모르고 아버지를 따라 마을 회관에 갔다.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회관에는 공포에 질린 표정의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어떤 동무는 눈물을 찔끔찔끔 짜기까지 했다.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의 두 팔을 꽉 잡고 있는 동안, 그 옆에서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불에 무슨 바늘을 달구고 있었다. 주사침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달아오른 주사침을 아이 왼쪽어깨에 순식간에 찔러 넣었다. 아이들이 악 소리를 질렀다.

소심했던 나는 그 장면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달아났다가, 몇 십 미터 못가서 아버지에게 붙잡혀오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걸 맞아야 ‘꼼보’가 되지 않는다고 나를 달래주었고, 나는 꼼짝없이 불주사를 맞았다. 당시 우리가 맞았던 공포의 불주사는 전염병의 제왕이라는 천연두 예방접종이었던 것이다.

주사를 맞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서고 눈앞이 하얘지고 불이 번쩍 일었다. 그때 주사기도 처음 보았고 불주사라는 말도 처음 들었다. 주사바늘이 귀한 시절, 바늘을 불에 달구어 소독하여 재활용했던 것이다. 불주사를 맞은 자리에는 물집이 잡혔다가 딱지로 변하고, 얼마 지나 딱지마저 떨어졌다. 지금도 왼쪽 어깨엔 무슨 훈장처럼 흉터가 남아 있다.

그 뒤로 ‘주사’는 내게 오랫동안 공포스러운 것으로 다가왔다.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오는 날이면, 선생님께 “변소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핑계를 대고 밖에서 맨 마지막까지 서성거리다가 마지못해 맞았다. 그걸 맞아야 병이 안 걸린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1950년대 후반 우리에게는 ‘꼼보’ 보다 ‘불주사’가 더 무서웠던 것이다.

천연두는 인류 최초의 전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3억 명 넘는 사람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1만 명 넘게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렇듯 천연두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 31개 국가에서 자주 발생한 풍토병이었다. 그러다 예방접종이 보편화되었고 마침내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에 천연두 멸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그 이후 천연두 예방접종을 권하지 않았고, 1993년에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불주사’는 남아 있다. 비시지(BCG)라고 불리는 결핵예방주사다. 주삿바늘을 달구진 않지만, 살아있는 균을 접종하는 탓에 맞으면 일시적으로 곪았다가 흉터가 남는다. 어린 시절 마음으로, ‘불주사’ 아닌(?) 결핵 백신이 하루빨리 개발되었으면 한다.

예전에 어른들에게 들었던 옘병(전염병)은 위에서 말한 꼼보 말고도, 호열재(콜레라), 쇠하래비(학질, 말라리아), 장질부사(장티푸스), 폐병(결핵) 정도가 있었다. 모두 의술의 발달로 사라지거나 정복 단계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복 못하는 것으로는, 『독감류』라고 하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있다. 미생물로서는 효모, 푸른 곰팡이같은 유익균도 있지만, 바이러스는 아직까지는 유익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 중국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일명 ‘우한폐렴’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1960년대 처음 알려졌는데, 모양이 코로나, 즉 왕관과 비슷한 모양이라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것의 변종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인의 식재료로도 쓰이는 박쥐가 숙주인 모양이다. 고열, 기침,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다가 심각한 폐렴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니 정말 무섭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은 직접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법이 없다. 얼마 전 호주에서 실험용 백신이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사용하기까지는 1년 정도가 걸린다고. 지금은 예방이 최선의 대응이다. 보건 당국에서 홍보하는 예방 수칙을 잘 따라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불주사’ 만큼의 과도한 공포는 금물이렷다. 침착하게, 지혜롭게 대응하면, 『사스』가 정복되었듯이 신종 『코로나』도 정복되고 평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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