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의 사노라면(5)

 

만나는 사람마다 의례 반갑게 나누던 인사가 ‘안녕하세요?’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처럼 만나는 사람과는 두 손 마주 잡아 얼싸안고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격하게 반가움을 주고받는 것이 정이 넘치는 대한민국 정서입니다.

그런 민족이 더 이상 누구에게도 눈을 맞추거나, 악수를 건네거나, 반갑다며 얼싸안고 안부를 묻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안녕을 묻기에는 나의 안녕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이 땅에 입국한 이후로 우리는 늘 해오던 평범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그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 말을 섞지 않습니다. 이웃의 안녕보다 먼저 궁금한 것은 어디에 확진자가 생겼고, 그 확진자가 어디로 이동을 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마스크가 언제 어디에 들어오는지 발 빠르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해 졌습니다.

이웃과 웃으며 “안녕하세요?”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던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상을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코로나19가 벌여 놓은 이상한 일상이 이어질수록 이전의 삶을 되돌려 보기에 힘씁니다.
이전 일상 속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순간들을 더듬더듬 떠올립니다. 그리고 소중하고 감사한 소소한 일상을 발견하고 저장하면서, 무너진 일상의 공허를 채웁니다.
그러고 보니 무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데, 익숙하게 누렸던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 또 배려를 마치 자연스레 마시는 공기처럼 거저 누렸다는 생각이 스치며, 발 끝 까지 뭉클했습니다.

'절실 한 것은 다 아름답다' 는 박노해 시인의 노래처럼 새삼 이전의 일상이 더욱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지금 평범한 일상이 절실한지도 모릅니다.

“안녕하세요?” 사전적 의미로는 안녕, ‘아무 탈 없이 평안함’ 즉, 아무 탈 없이 평안하게 지내는지를 묻는 것이겠지요. 위급한 시절을 보내다 보니 느낍니다. 내가 안녕해야 우리가 안녕하고, 우리가 안녕해야 내가 안녕 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건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나라와 나라와 같이 모든 관계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둘러보면, 모두가 이전에 평범한 일상을 만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탓하고 이웃을 비난하기 전에 나의 자리를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찬란한 우리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평범하지 않은 코로나19의 일상이 익숙해지지 않도록 우리가 누렸던 소중한 삶의 조각을 찾아 감사하고, 또 기대하며 나아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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