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연의 창가에 앉아 ... (40)

 

    
     불영계곡 스케치

 

    임 하 연

 

해 돋는 동해 바다 파도 소리는

돌아오라 돌아오라 쉬임없이 재촉하다

숨가쁘게 넘고 돌아 천축산

부처님 그리매 드리운 불영 골짜기

산태극, 물태극 흐르는 물길따라

안으로 깊게 깊게 들어가다

 

수백 년 풍우한설 함께 늙은 소나무 숲

청정 비구니의 어여쁜 수행을 굽어보며

솔잎 향 미소 흘리다

 

산안개 자욱하여 나그네의 걸음을 붙잡고

하얀 허공으로부터 날아온 새끼 풀벌레

찰나의 선잠이 달다

 

둥실 용의 허리 감아 오르는 메밀꽃 구름

선류정의 선녀며, 산인이며

세속을 한 자락 묻혀온 길손이며

신선계와 속계가 어우러진 공간

감격과 소회와 욕망과 허심이 교직하는 시간

넋을 놓고 한숨 쉬다 쉬다

 

어느 왕후의 꿈속에 나툰 불영사 스님처럼

세상의 등불이 되고파 달래며

마음 두고 몸만 하산길에 서다

 

 

※ 불영계곡을 소재로 쓴 임하연의 이 시는 이달(2020. 3), 국제PEN에서 발행한 PEN문학》에 게재된 작품이다. 국제PEN은 1921년에 창립되어 140개국의 회원들이 가입한 국제 문학인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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