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어떤 노래는 부르다보면 시작과 달리 중간부터 엉뚱한 노래와 겹치는 경우가 있다. ‘어버이 은혜’를 부르다가 “아, 고마워라 스승의 은혜”로 빠지는 경우가 그렇다. 노래만 그런 게 아니라 시를 외다보면 천태만상으로 귀결될 때가 많다.

이맘때 자주 암송하게 되는 이호우의 시조 ‘살구꽃 핀 마을’은 박목월의 ‘나그네’와 겹친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뉘집을 들어선들 반겨 아니 맞으리”하는 식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옛날부터 살구꽃과 술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살구꽃 핀 마을(杏花村)’은 주막(酒幕)을 의미했다. 당나라 때 유명했던 시인 두목(杜牧)이 ‘청명(淸明)’이라는 시를 지으면서 “한번 물어보세 술집이 어디 있는지, 목동이 멀리 가리킨 곳 살구꽃 핀 마을(借問酒家何處在 牧童遙指杏花村)”이라고 했다. 황현(黃玹)은 한 발 더 나아가 “살구꽃은 무슨 감정이 있길래, 강 건너 서쪽에 술집을 가리고 섰나(杏花有何情緖, 遮却水西酒家)”라 읊었다.

박목월과 조지훈은 절친한 사이다. 원래 ‘나그네’는 조지훈의 ‘완화삼’에서 비롯했다. 조지훈이 완화삼을 써서 박목월에게 보여주었는데, 옛 시인들이 지인들끼리 운을 빌려(次韻) 시를 짓듯 “술익는 강마을에 저녁노을이여”라는 구절을 박목월은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바꿔서 나그네를 썼다. 결국 완화삼은 나그네의 유명세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완화삼의 다음 구절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는 묻어두기에 너무 아깝다.

온난화로 개화시기도 빨라졌지만, 예전에 살구꽃은 삼삼(三三)에 시작해서 백오(百五)에 만개한다고 했다. 삼삼은 삼짇날을 뜻하고 백오는 청명절이다. 청명은 동지로부터 일백오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삼백오’하면 살구꽃 아래 친구들과 끼리끼리 어울려 술자리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살구꽃은 서민적인 술이 당기는 꽃이다. 서거정(徐居正)은 ‘난파춘일잡영(鑾坡春日雜詠)’이란 시에서 “복사꽃은 수줍고 살구꽃은 바보 같거니(桃花嬌小杏花癡)”라고 했다.

복사꽃이 예쁜 아가씨라면 살구꽃은 웃음 많은 여인이다. 친구 같은 여인이다. 그래서 주막이 잘 어울린다. 앞서 ‘행화촌’이 주막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벗들과 술잔을 나누며 한바탕 흥취를 돋게 하는 꽃이다.

소동파(蘇東坡)는 달밤에 살구꽃 아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 것을 즐겼다. “살구꽃 사이에 술자리 벌이니 맑은 향기 발하는데, 벗들과 긴 가지 휘어잡으니 꽃잎이 눈처럼 떨어지네(花間置酒淸香發 爭挽長條落香雪)”라고 했다. 완화삼의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는 그래서 벗을 그리는 마음이다.

소동파는 또 “살구꽃은 주렴에 날아 남은 봄에 흩어지고, 밝은 달은 문에 들어 은자를 불러내네(杏花飛簾散餘春 明月入戶尋幽人), 살구꽃 사이에서 달빛 밟으며 막걸리(村酒)를 마시노라, 다들 취해서 돌아가니 관장의 책망 듣기 면하였네(穿花踏月飮村酒 免醉歸遭官長罵)”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조선 후기 명재상 채제공(蔡濟恭)은 살구꽃 아래서 절친한 벗과 술자리를 기약했다가 약속이 어그러져 아쉬운 마음에 시를 읊었는데 절창(絶唱)이다. “어린 아이는 섬돌을 쓸고 여종은 술잔을 닦는데, 노을은 살구꽃 가지로 옮겨 가서 걸렸구나(僮掃苔堦婦洗巵, 夕陽移在杏花枝)” 친구는 오지 않고 술익는 마을에 타는 저녁놀이다.

살구꽃이 필 때는 농사일로 한창 바빠지는 때이기도 하다. 집집마다 농주 익는 냄새가 진동했다. 동네마다 ‘술익는 마을’이다. 예전 시골 농가가 다 그렇듯 우리 집에도 막걸리 농주(農酒)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식구가 많은 까닭에 큰형과 나는 커다란 술항아리가 놓인 방을 같이 썼는데, 뒤꼍에 아름드리 살구나무 네 그루에 꽃이 만발하여 초가를 덮을 때면, 온 방안에 “보각바각 보각바각” 술익는 소리가 났다. 어려서부터 그 분위기가 좋았던지 지금도 살구꽃이 필 때면 술익는 마을 뉘집엔들 대문을 열고 불쑥 들어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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