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사회가 힘들면 언어가 천박해진다고 했던가.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습관에 ‘개-’가 붙지 않은 형용사가 없을 정도다. ‘개 힘들어’ ‘개 싫어’ ‘개 짜증나’ ‘개 빡쳐’ 그런데 이건 알고 써야 한다. ‘개 빡치다’의 표준말은 ‘깻박치다’이다.

‘깻박치다’의 사전적 의미는 ‘(隱語로) 그릇 따위를 떨어뜨려 속에 있던 것이 산산이 흩어지게 만들다’. 또는 ‘(俗語로)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망치다.’라고 되어있다. 사전의 이러한 설명은 반만 맞는다. 표준어를 규정하는 언어학자들이 도시에서 공부만 하신 분들이라 옛말 형성과정의 실체를 경험하지 못해서, ‘깻박치다’의 어원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깻박치다’는 ‘깻박’과 ‘치다’가 합쳐진 말이다. 또 ‘깻박’은 ‘깨’와 ‘박’이 합친 형태로 명사끼리 겹칠 때 사이시옷(ㅅ)이 붙은 것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깻박이라는 단어가 없다.

깻박은 깨를 담은 바가지를 말한다. 플라스틱 용기(用器)가 없던 옛날에는 박을 쪼개서 만든 바가지가 농사용 그릇으로 이용되었다. 비싼 도자기를 농사용 그릇으로 쓸 수도 없거니와 질그릇은 무거워서 고정된 상태에서나 활용되었다. 바가지는 가볍고 탄탄해서 편리할 뿐 아니라 비교적 구하기도 쉽다. 그래서 온갖 곡식을 퍼 담는 데는 바가지가 필수였다.

그런데 왜 하필 ‘깻박’일까. 농사는 밭갈이와 씨앗을 파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밭을 갈고 고랑을 만들어 씨앗을 뿌리는 데에 바가지가 없어서는 안 된다. 바가지에 곡식씨앗을 담아 고랑에 뿌리는 방법을 호종법(瓠種法)이라 한다. 바가지에다 씨앗을 넣고 바가지 꼭지를 살살 흔들어서 뿌리는 방법이다. 흔들어 뿌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막대기로 바가지를 톡톡 두드려서 뿌리기도 하는데, 예전에는 참깨나 조(粟)를 파종할 때에 이 방법을 썼다.

참깨는 곡식 중에서 귀하기로는 첫째다. 그 귀한 참깨를 바가지에 담아 파종을 하는데 누군가 ‘깻박’을 쳐버리면 그보다 큰 낭패는 없다. 파종은 그나마 다행이다. 추수한 참깨를 담아놓은 바가지를 누군가 쳐서 땅에 쏟아지면 답이 없다. 작고 까매서 흙모래 알갱이와 구분도 어렵거니와 굵기도 비슷해서 키로 까불거나 채로 걸러낼 수도 없다. 손으로 일일이 깨알을 주워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깻박친다는 말이 얼마나 끔찍한 표현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에서 우파를 보면 깻박이 생각난다. 바로 어제 개표를 마친 4.15총선의 결과를 통해 사람들은 깻박이 엎어진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우파 지지자들은 모래알이나 깨알 같이 불안한 집합체라는 것을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다. 옆에서 툭툭 두드릴 때마다 순간 우수수 쏟아지는 모양새를 여러 차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좌파진영은 굳건하게 세를 늘려갔다. 내가 여기서 ‘보수, 진보’가 아니라 ‘우파, 좌파’로 구분 짓는 이유는 현대 세계 보편적 정치사상에서 진보는 민족주의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좌파는 진보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흔히 정치에서 단단한 지지층을 콘크리트에 비유한다. 과거 좌파 핵심 지지층을 콘크리트에 빗댔는데,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가 기술의 발전을 통해 기존의 강도보다 10배나 강한 슈퍼콘크리트로 진화해왔듯, 이제 우리나라 좌파도 초고강도 지지력과 세력을 보여주고 있다. 슈퍼콘크리트는 철근도 필요 없이 구조물을 자유자재로 건축이 가능하듯, 4.15 총선에 압도적 지지를 얻은 정권은 앞으로 마음대로 한국을 변형할 것이다. 나는 지금 정부의 정책들이 국민과 미래세대에 혜택을 주게 되어 압승을 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슈퍼콘크리트로 진화한 그들이 깻박을 치는 기술이 월등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바가지도 귀했던 옛날에는 바가지가 깨지면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굵은 실로 꿰매어 붙였다. 굵은 실 자국이 얼룩덜룩 모양새는 ‘꼬라지’에 가깝게 된다. 이번 선거에 통합한 우파 정당의 모양새가 마치 그것과 비슷해보였다. 이제 그 바가지에 한줌 시멘트 덩어리가 겨우 담겨있는데 깻박치기 선수는 그 바가지마저 찰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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