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시인/논설위원)

 

거리가 텅텅 비고, 가게는 문을 닫고, 일부 공장은 멈췄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의 불황과 대량 실업을 예고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격리조치와 비대면 접촉 강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사회적 거리두기, 『제자리에서 꼼짝 마라』는 ‘동작그만’ 행동학을 유발시키면서, 바이러스가 인류문명사를 크게 바꾸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태로 소위 ‘선진국’의 민낯을 보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국가는 선제적 방역에 실패하였다. 확진자와 사망자수가 현재 폭증하자,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공공의료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공공의료보험의 역사가 깊은 우리나라와 달리, 영리적 민간병원 위주의 의료시스템으로는 전혀 적합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사례에서 드러났다.

또 하나는 위기 상황에서 시장 통제 문제다. 마스크 공급 과정에서 시장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코로나 대유행의 약한 고리가 되었다. 시장 위기상황에서는 국가 주도 개입이 필요하다. 시장은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급해주어야 하지만, 국가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마스크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해외 사례를 우리는 보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의식 속에 강하게 존재하던 선진국과 시장만능주의 신화가 깨졌다.

또 깨진 것이 있다. 얼마 전 만해도 기본소득지급은 급진적 주장이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자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도 4.15 총선을 계기로 여·야가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동의했다. 여당의 총선 압승으로 청와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예상된다. 예부터 『가난은 나라도 어쩔 수 없다』라며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이 역시 케케묵은 신화일 뿐이다. 국민이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서 생활고는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기본 책무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로 많은 것을 경험했다. 하찮다고 여겼던 바이러스에 인간사회가 맥없이 무너지면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알았다. 바이러스의 평등성이다. 바이러스는 신분, 나이, 인종, 성별, 직업, 종교 등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구분하지 않고 평등하게 공격했다.

한 달도 안 돼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이러스는 국경이 없다. 어쩌면 핵전쟁보다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일 수 있는 것이 바이러스다. 안전지대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 격리가 때로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선진 방역시스템과 선제대응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 선제대응이 전 세계의 모범국가가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전 세계가 마스크를 쓰고, 우리보다 더 크고 강하다고 믿었던 미국, 중국, 유럽 등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그간 인류가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바이러스 감염병 등장은 상수화, 일상화 추세이지만, 우리가 변한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변화는 인간의 탐욕적 바이러스부터 척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무분별한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성장, 개발만을 문명발달로 생각하는 탐욕정신이다. 그 한 예로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포함한 생태계 파괴, 거기에 자본과 물자, 사람의 대량이동 등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인간의 탐욕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 탐욕정신을 버리지 않는 한 또 다시 이러한 사태는 반복 될 것이다. 이제는 문명의 발전과 기술의 가속도, 편리만이 능사가 아니고, 억제와 불편과 느림이 때로는 인류를 살리는 길일수도 있음을 말이다. 어떤가? 지금!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었다. 놀랍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교통수단이 멈추니 공기가 깨끗해졌다. 공해로 가려졌던 하늘이 제 모습을 찾고, 늘 매캐한 공기로 한치 앞이 안 보이던 인도에서는 히말라야 산맥이 보인단다. 바이러스 창궐 덕분에, 우리가 바라는 깨끗한 환경이 무엇이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이러한 반성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난다면, 자연은 변종 바이러스를 끊임없이 오만한 인간 사회로 보내지 않을까?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에서 사람들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속에서 희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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