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의 사노라면 (7)

 

커피, 어떤 잔에 담기느냐에 따라 한 잔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커피 본질은 바뀌지 않겠지만 우리가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 안에
어떠한 요소로든 그 본질에 더하기, 빼기의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따뜻하게 온기를 한번 더한 찻 잔에 담겨 나오는 커피나
정성껏 고른 그릇에 잘 어우러지게 나온 음식들 말이다.
이것들을 마주할 때 우린 한 층 더 기쁘고 즐거우며 만족스럽다.
때론 그것 이상의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알 것 같다.
차와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해와 애정이라는 것을...
주위에 그릇 좋아하는 분들을 보면 세밀함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담길 음식의 성질에 따라 담아낼 그릇을 생각하고 구입한다.
그 분들의 마음에는 담길 음식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
또 그릇이 쓰일 장소와 대접할 대상을 고려해 그릇을 챙기기도 한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어울림에 대한 고민이다.

출장을 자주가기에 회사에서 서울역까지의 이동경로는 훤하다.
자주가는 길목이니 지나치는 상가들도 익숙하기 마련인데,
그 중 마음으로만 수십 번 다녀온 카페가 하나 있었다.
직접 로스팅을 하는 것 같아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그곳을
얼마 전 우연히 다녀오게 되었다.

기분 좋은 설레임으로 커피를 기다렸고, 드디어 마주한 커피 트레이에는
아주 예쁜 잔에 찰랑이는 커피와 함께
구구절절 적혀있는 손 글씨 메모지가 함께 놓여있었다.
요즘은 핸드드립 카페라면 어느 정도 원두에 대한 소개 글을 적어주니
그런 내용이겠거니 하고서 슬쩍 밀어 놓고 커피를 마셨다.
좋아하는 특유의 커피 향과 아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잔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몇 모금을 마시다보니 아까 밀어둔 메모지에 자꾸 눈이 가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원두소개가 아닌 커피를 담아 나온 찻 잔을 설명하는 메모지였다.
‘영국 로얄 알버트 100주년 기념 잔에 정성껏 내린 커피를 담아낸다’ 라는 내용의 글 이였다.
글귀를 읽기 전에도 물론 만족했지만
모르긴 몰라도 읽은 후 다시 한 모금 마실 땐
영국 귀족만큼의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것들을 담아내며 산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도 있겠지만 이런 것들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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